1910년 전후 소설 17편 통해
조선 시대 백성의 소통법 분석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부부지간에는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책이 있다. 채백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소설을 통해 조선 시대 백성들의 일상 속 커뮤니케이션을 규명한 <조선 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출간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책은 <소현성록 1>, <이춘풍전>, <숙향전>, <배비장전>, <홍길동전>, <춘향전> 등 다양한 장르의 한글 고전 소설 8편과 <은세계>(부패한 관리를 비판한 정치소설), <화상설>(축첩 문제의 폐해를 다룬 작품), <재봉춘>(신분 차이로 빚어지는 갈등을 다룬 작품) 등 1910년 전후로 발표된 신소설 9편 등 17편의 소설을 통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인 조선 시대 일반 백성의 소통법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엄격히 나뉜 탓에 부부간 대화할 때도 노비를 통해야 했던 조선 시대 양반들. 낮에는 대화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던 조선 시대 부부간 호칭은 계급과 신분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관직에 있는 양반의 경우 부인은 남편을 직위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고, 남편은 부인을 '부인' 또는 성씨로 불렀다.

하지만 몰락한 양반들의 경우엔 부인은 남편을 '여보시오'나 '이녁'으로, 남편은 부인을 '자네'로 호칭하고 있다. 부부간 대화의 경어법은 남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부인은 남편에게 존경법과 겸양법, 공손법을 모두 사용하지만 남편은 보통 예사 높임을 사용한다. 남성 중심 문화가 부부간 대화에서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조선시대 지체 높은 부인을 가리키던 '마누라'라는 호칭이 개화기를 거치면서 보편화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마을 정보가 주로 확산되는 장소로 우물가, 빨래터가 있으며 주막은 마을 단위를 넘어선 정보 유통의 주요 통로가 된 점도 시선을 모으는 대목이다. 문자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였던 덕분일까. 미디어의 경우 조선 시대 백성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편지였다. 당시엔 사람을 통해 주로 전달됐지만 개화기 들어 일간지 취재에 비둘기가 활용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개화기 우편제도 도입으로 우체부가 등장하면서 남녀유별 문화와 충돌하는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중요한 정보의 원천인 책을 비롯해 그림, 노래, 신문, 전화 등의 활용 변천사에도 눈을 뗄 수 없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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