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존재로 영장류 진화 비결
얼굴의 미래 '세계화'가 큰 영향



"나이 40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제16대)으로 꼽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한 말이다.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추천받은 한 인사를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절하면서 한 얘기라고 한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얼굴을 만들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이라는 링컨의 '얼굴 철학'이 담겨 있다.
 
인간은 미묘한 얼굴 표정과 말을 결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수만 가지의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기도 하고, 타인의 표정을 즉각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얼굴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이다. 순수 우리말인 얼굴의 '얼'은 마음과 영혼, '굴'은 통로라는 뜻이다. '얼굴이란 영혼이 드나드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한 링컨의 얘기 역시 한 사람의 얼굴에 그가 겪은 사회적 활동과 역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얼굴이 곧 그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겠다.
 
미국의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애덤 윌킨스가 쓴 이 책은 얼굴의 진화와 인간의 본질 사이에 얽힌 복잡한 그물망을 탐구한다. 만만찮은 분량(672쪽)에 5억 년 전 생존했던 작은 무악어류(턱이 없는 어류)인 최초의 척추동물 얼굴부터 시작해 유악어류와 포유류, 영장류와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역사와 미래 인간의 얼굴까지 망라한다. 화석 기록부터 유전학, 생물학과 인류학 등 인간 진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집약시키며 흥미로운 이론적 지도를 그려낸다.
 
흔히 모든 동물에게 얼굴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얼굴을 가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얼굴을 '한 쌍의 눈과 입이 있는 머리 앞쪽 면'으로 정의한다면 말이다. 갑각류, 곤충류를 포함한 절지동물과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 정도가 고작이다. 얼굴은 동물계에서 참신한 진화적 산물이었고, 이 진화는 수차례에 걸쳐서 발생했다.
 
저자는 "모든 생명체의 얼굴 중에 인간의 얼굴이 가장 특이하다"고 단언한다.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고 움직임과 표현력 면에서도 인간의 얼굴은 다른 포유류와 확연히 다르다. 인간의 얼굴을 만드는 특성들은 5000만~5500만 년 전에 등장했다. 이 시기 인간의 얼굴은 털과 주둥이가 사라지고 이마가 생겼으며, 큰 두뇌가 있고 두 눈의 간격이 좁아지고 전방을 향하는 눈을 가지는 형태로 변화했다.
 
책은 특히 주둥이의 축소에 주목한다. "주둥이가 얼굴의 정면을 더 이상 지배하지 않으면서 얼굴은 더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표정을 만드는 두 중심지 중 하나인 입은 입술 움직임을 통해 더 많은 표정을 보여 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돌출된 주둥이 뒤에 눈이 있는 포유류에 비해 눈이 적절한 지점에 위치하게 되면서 가까운 곳의 사물을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됐고 상대방의 입 주변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기도 더 쉬워지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얼굴 근육의 발달도 인간이 갖는 주요 특성 중 하나이다.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얼굴 근육이야말로 포유류가 갖는 특성이며 얼굴 근육은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사교적인 영장류에서 최고로 발달했다. 실제 인간의 얼굴 근육 수는 21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의 진화는 두뇌의 진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나아가 인류가 사회적 존재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의 진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책은 강조한다. 눈(시각)과 코(후각), 입(미각) 등이 모인 얼굴이 감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본부'라면 두뇌는 이를 토대로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담당한다. 인류는 얼굴의 다양한 감각과 얼굴 뒤편의 두뇌 회로 작용을 통해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고, 타인의 표정을 읽으며, 자신의 표정을 만들어 낸다. "얼굴 인식 능력은 그 자체로 전부가 아니라 흔히 사회적 상호작용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에 대한 특별하면서도, 점증하는 요구는 얼굴의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집단 생존을 위해 사회적 결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더 사교적인 개인이 선택됐고, 이것이 결국에는 더 많은 소통을 촉진하고 더 강한 사회성을 발전시켰다.
 
인간 얼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흥미롭다. 저자는 진화적 관점에서 얼굴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세계화'를 꼽는다. 점점 더 많은 민족이 섞이면서 미래 인간의 얼굴이 바뀔 것이 분명한데 이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에 흥미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다. 적어도 상대를 멸시하는 의미를 담은 '잡종(雜種)'이라는 표현은 사라질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얼굴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비롯된 '성형수술 열풍'을 인간들 사이의 사회성 증대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재미있다. 저자는 "얼굴을 손보는 행위로 얻은 변화는 어느 것도 자손들에게 전달되지 않기에 직접적인 진화적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점잖게 충고한다. 김해뉴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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