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물들 좌우익 대립
외면할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
하지만 극복의 대상

저녁 무렵 진영 들녘에 내리는 노을은 새삼 이 고장이 과거 아름다운 농촌이었던 것을 상기시키곤 한다. 지금은 공장지대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지만, 황금 들녘과 함께 주황색 단감이 지천으로 열려 있는 진영은 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마을이다. 그러나 과거 어느 지역이나 어려웠던 시절, 진영도 예외는 아니어서 춘궁기의 배고픔이나 좌우 이데올로기의 희생을 몸서리치게 겪은 지역이었다.
 
20여 년 전 읽은 김원일의 '노을'은 흥미롭게 진행되는 전개와 함께 진영이 배경인 것으로 인해 재미와 감동을 만끽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갑수가 멱을 감던 여래못은 여전히 한여름 벌거벗은 우리 친구들의 놀이터였다. 선달바우, 봉화산, 지서, 진영역, 설창리 등 너무 잘 아는 지명들 속에서 나의 소설 읽기는 내가 소설 속 중요 인물이 된 듯 갑수를 따라다녔다.
 
그때 소설 '노을'이 주었던 흥미로움만큼이나 진영의 아픔 또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진영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큰 들을 가진 그런대로 부촌이었고, 부산과 마산 그리고 밀양과 대구 지역을 잇는 교통 요지였다. '노을'은 지주와 소작인 간의 대립, 그래서 좌우익의 극한 대립으로 이어지는 너무나 리얼한 6·25를 전후한 당시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그 고통은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바로 우리 부모들의 고통이었고, 진영을 지킨 살아있는 역사라는 사실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몇 년 전, 금병공원에 김원일 선생의 문학비가 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원일 선생의 지인 몇몇이 중심이 되어 김해시의 지원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노을'을 읽으며 작가를 흠모하고 있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의회의 지원 승인도 시의원의 입장에서 적극 해결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김원일 선생의 부친이 해방공간에서 좌익의 지방 수장이었던 것을 안 진영의 원로들이 문학비 건립을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 기세에 비 건립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원로들과 비 추진위원들 간에 몇 번의 회의와 설득 작업이 있었고, 나도 나서서 원로들을 설득했다. "김원일 선생이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희생양이다. 김 선생의 작품들은 좌익을 옹호하는 작품도 아니고, 오히려 과거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싸우던 비극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이다. 그리고 진영을 이렇게 전국에 잘 알린 작가가 어디 있느냐?" 설득 끝에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금병공원에 세워져 있는 문학비를 볼라치면 그때가 떠올라 새삼 흐뭇한 마음이 들곤 한다.
 
'노을' 속의 피비린내 나던 이데올로기 대립은 이제 사라진 듯하지만, 아직 우리 주위 곳곳에서는 그 불씨가 남아 불안함을 더해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들 개개인은 화해와 용서로서 이데올로기를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 '노을'이 말하는 이 시대의 교훈일 것이다.
 
오늘도 진영 들녘에는 노을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다.
 


>> 제경록은
1955년 김해 진영 출생. 4, 5, 6대 시의원으로 당선된 김해시의회 내 유일한 3선의원(한나라당)이다. 4대 김해시의회 후반기 총무위원장, 5대 전반기 총무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 16일 시의회 의장 보궐선거에서 당선, 제6대 김해시의회 신임의장에 당선됐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