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선임기자

세상은 가까워지고 있어, 생각해 본 적이 있니?
우리는 형제처럼 가까울 수 있다는 걸…
미래는 아직 모르지만 난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어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걸

팝음악이 거리를 관통하던 70·80년대를 경험한 장년층에게 독일 출신 록 밴드 스콜피언스는 꽤 친근한 편이다. 그들이 부른 곡 중에 'Wind of Change'가 있는데, 가사 내용처럼 변화의 바람을 노래한다. 이 곡이 유명해진 것은 음악적 완성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독일 통일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1989년 11월 9일이다. 그에 두어 달 앞서 동독의 록 뮤지션들이 반정부 선언을 발표하며 각종 자유화 조치를 요구했다. 그 요구 중 하나가 'Wind of Change'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TV 방영을 허용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반정부 선언에 동조하는 뮤지션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마침내 시민들에게 확대되면서 그 두텁던 장벽이 무너지고 말았다.

독일의 통일이 물론 노래 한 곡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동방정책을 천명하면서 서독과 동독 사이에 기본조약이 맺어진 건 1972년. 그때부터 따지자면 장벽 붕괴까지는 무려 1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기본조약은 양 체제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경제·학술·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촉진하기로 했지만, 실제 문화협정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나서야 겨우 체결됐다. 동독이 체제안정에 위협이 되는 서독, 즉 서구의 문화침투를 경계해서다.

며칠 뒤면 남한 예술단 일행이 평양을 방문해 공연을 펼친다. 조용필 윤도현 최진희 백지영 레드벨벳 등 정상급 가수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남쪽의 사는 모습을 노래로 전한다. 이들 가수가 부를 노래 중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북한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하고,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의 애창곡이라는 뒷이야기도 들린다.

그중에서 YB의 윤도현이 평양에서 들려주겠다는 '1179'는 이번 행사를 위해 만들었다 싶을만큼 주제가 닿아있다. 가사 내용이 그렇다. '처음에 우리는 하나였어/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똑같은 하늘 아래 기도했었지/너와 내가 잡은 손/그 누군가가 갈라 놓았어/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눈물 흘리지…'. 노래 제목인 1179는 한반도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인 1179㎞를 가리킨다고 한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응해 미국이 정밀타격까지도 검토하는 급박한 상황이 불과 두어달 전까지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평양 공연은 남북관계에서 커다란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곧 이어질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는 이런 화해 무드를 타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마련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단번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괴뢰’가 ‘북한동포’로 바뀌는 데만도 70여 년이 흘렀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듯 최근의 계기들이 안팎의 걸림돌 없이 진행되어 서로 점점 가까워진다면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방북 예술단의 음악감독을 맡은 윤상은 공연 목표에 대해 "북한 동포에게 한국에서 보여주는 똑같은 감동과 어색하지 않음을 전하는 게 첫 번째 숙제"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서로 어색해하지 않는 것, 그게 가까워지는 첫 번째 과정이다.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