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종문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김해지회 지회장

지난 31일 새벽, 서울을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양이 어둠을 밝히기 전에 집을 나서는 사람들의 온몸에는 희망의 기운이 감돌았다. 도시의 아침을 새롭게 준비하는 환경미화노동자,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전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서울을 향했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청소년들이 모였다.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우리나라는 선거 참여 연령이 만19세로 OECD가입 국가 중 가장 높다. 청소년들은 이미 지난달 22일부터 선거 연령을 만18세 이하로 하향할 것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국회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청소년들의 주장이 나에게 "우리도 사람이다!"로 들린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시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민주주의'를 만들고 정착시킨 국가로 인정받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껍데기만 '민주'일뿐 사회의 약자를 보듬고, 타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알맹이는 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아직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도시재개발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용산참사 현장에도, 목숨을 걸고 굴뚝에 오른 노동자의 투쟁 현장에서도 "여기 사람이 있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는 말이 울려 퍼졌다.
 
국가도, 정치인도 앞다투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외친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미래를 키워가는 학교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얼마 전 김해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학교에 있는 청소년도 '사람'이니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것인지 고민해 보자고 마련한 자리였다. 지금까지의 교육현장에선 교사와 교육관계자와 학부모의 목소리만 존재하였으므로 실제 교육의 주체인 청소년의 이야기를 경청하자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토론회 시작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토론회에 참석한 일부 학부모들은 청소년의 목소리를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학생에게 인권이 왜 필요하냐?", "아이들이 사고 치면 누가 책임지냐?", "학생을 통제하지 않으면 세상이 망한다." 등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결국 "청소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철학적인 논리도 설명도 합리적 대안도 전혀 없는 저주가 가득찬 말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 청소년들은 인내심을 갖고 꿋꿋하게 이를 듣고 있었다.
 
민주주의 사회란 다양한 의견과 견해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교육은 그 속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주지 않은 '어른 권력'을 이용해 청소년의 주장을 막고, 무시하고, 윽박지르는 것이 어른이라면 난 1분 1초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타인에게 고함을 지르고, 겁박과 조롱을 섞어서 강요하는 것을 우리는 폭력과 야만이라 부른다.
 
지금 봉황대에는 철모르고 일찍 피어오른 꽃마름도 있고, 뒤늦게 꽃을 피우는 벚꽃도 있다. 긴긴세월 변하지 않는 자연도 빠르고 늦음이 있다. 우리는 이런 꽃을 보면서 '철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누가 학교 담장안에 갇혀 있는 꽃들에게 봄의 희망을 줄 것인가? 나는 그 첫걸음이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이라 믿는다.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마트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는 정치인들이여, 청소년들에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기회를 주시길 간절히 부탁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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