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은 정몽주의 '김해산성기'(고려시대).


'중세도시 금주, 김해의 재발견' 주제 다뤄
학술회의 내용 '김해시사' 편찬에 활용



김해시는 오는 6일 오후 1시 30분 김해문화원 1층 강당에서 고려시대 김해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올해로 1100주년이 되는 고려 건국을 기념하고 가야왕도 김해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이번 학술회의는 '중세도시 금주(金州), 김해의 재발견'을 주제로 진행된다.

창원대 구산우 교수와 동의대 최연주 교수가 '고려시기 김해의 지방행정구조', '고려시대 김해의 불교와 사원'에 대해 각각 발표한다. 이어 부산대 정용범 교수가 '고려시대 김해지역 유통경제'를, 신라대 배상현 교수가 '고려시대 금주 치소성과 공간적 성격'을 차례로 다룬다.

고려시대 김해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이자 군사요충지였다. 성종(995년) 때 '금주안동도호부'로 불리며 전국에 설치된 4개 도호부 중 하나로 위세를 크게 떨쳤다. 창원, 마산, 진해, 함안 등 주변지역을 부속 현으로 거느리고 통제했다.

고려후기에는 일본 정벌의 전진기지로 여몽연합군이 김해에 주둔했다. 당시 충렬왕이 여몽연합군을 격려하기 위해 내려와 금강사에서 올린 차를 마셨는데, 그 맛과 향에 반해 '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장군차 유래설' 중 하나로 전해진다. 또 고려 말 박 위가 왜구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분산성이 성곽으로 남아있다.

김해는 고려 때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김해를 중심으로 밀양, 양산, 울주, 기장, 동래, 웅천, 창원 등을 연결하던 교통로는 '금주도'로 불렸다. 제철 수공업이 성행했던 지금의 대동, 상동, 생림 지역에는 대감·감내 등의 철 생산 관련 지명이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김해시 관계자는 "약 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1년 '김해시사'를 발간할 계획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김해가 걸어온 발자취를 15권의 책으로 담아낼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나온 내용은 '김해시사' 편찬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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