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가들 가운데는 가끔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라면집에서는 생면을 조리해서 파는데 반해 한국의 라면집에서는 인스턴트 라면을 그냥 끓여서 낸다고. 이를 두고 마치 식탁위에 '티슈'가 아닌 '두루마리 화장지'가 올려져 있는 것처럼 수준 낮은 식문화인냥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일반화가 낳은 오류일 뿐이다.

일본식 라멘과 인스턴트 라면은 어원이 같을 뿐, 유래도 다르고 형태도 다른 음식이다. 최근 꼬꼬면의 열풍과 함께 라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또 김해지역에도 일본식 라면집이 많이 생겨나면서 '라면'과 '라멘'의 차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 지금부터 나(라면)의 모든 것을 말해주겠다.


Q(질문): 당신을 중국에서는 라미엔, 일본에서는 라멘, 한국에서는 라면이라고 부른다. 각각 어떤 차이가 있나?
A(답변): 그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집안 내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밀가루 반죽을 '잡아당겨 늘인' 면이라는 뜻의 라미엔(拉麵)은 중국 명나라(1368~1644년) 때 산시성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중국 전역으로 퍼져 갔다. 간수를 넣어 만든 면을 국물에 말고 죽순조림, 구운 돼지고기, 달걀 등을 얹은 일본식 라멘은 어느 특정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다양한 지역의 특징이 모여 일본에 정착되었다. 때문에 초창기 일본에서는 라멘이라는 단어보다는 중국식 면요리라는 뜻의 주카멘(中華麵), 주카소바(そば)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었다.
 
Q: 결국 중국의 라미엔이 일본으로 건너가 주카멘, 주카소바를 거쳐 라멘이 되고 그 라멘이 즉석식품으로 개발된 것이 당신이라는 말인데.
A: 주카멘과 나의 본질적인 차이는 보존성과 편의성에 있다. 나는 밀가루로 만든 면발을 기름에 튀기는 등의 처리를 거쳐 수분을 급속히 제거하므로 노화를 막고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또한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많은 조직이어서 뜨거운 물을 붓거나 단시간 가열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인스턴트(즉석)'라는 수식어를 달고는 있지만, 보존성과 편의성으로 인해 '제2의 쌀(식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Q: 당신의 탄생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A: 나는 1958년 일본 닛신(日淸)식품의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에 의해 창조되었다. 생선에 밀가루를 묻히고 뜨거운 기름에 튀기면 표면에 많은 구멍이 생기고 수분이 증발하면서 쪼그라든다. 이렇게 쪼그라든 생선튀김을 뜨거운 물에 넣으면 표면에 생긴 구멍에 수분이 차면서 원래 상태로 복원된다. 우동에 올려진 튀김가루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안도 모모후쿠는 이런 원리에 착안해 나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중국 광둥성의 이후미엔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후미엔은 달걀로 반죽한 면을 데쳐서 튀긴 후에 각종 재료와 함께 볶거나 국물을 부어 먹는 요리다.
 

▲ 판매되고 있는 라면 중 상위권에 속하는 제품들. 신라면은 1986년 출시 이후 1위 자리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

Q: 처음부터 지금처럼 면과 스프가 분리된 형태였나?
A: 그건 아니다. 1958년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개발했을 당시에는 면발 자체에 양념이 된 일체형이었다. 하지만 일체형은 쉽게 변질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후 묘조(明星)식품에서 면과 분말스프가 따로인 분리형이 출시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원조로 보기도 한다.
 
Q: 그럼 한국에는 언제부터 소개되었나?
A: 심각한 쌀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혼분식 장려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에 삼양식품이 정부의 지원금으로 도입한 라면 기계 2대로 만든 '삼양라면'이 시초였다.
 
Q: 인기가 대단했을 것 같은데.
A: 천만의 말씀이다. 닭고기 국물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당시의 라면은 일본의 묘조식품과의 기술제휴로 만들어진 탓에 일본 라면과 맛이 비슷했다. 한마디로 싱거웠다. 게다가 면보다 밥이 익숙했던 한국인에게 나는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때문에 삼양식품 직원들이 전국을 돌며 나를 알리느라 고생 꽤나 했다.
 
Q: 삼양라면 이후의 정착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A: 삼양라면의 성공으로 시장이 형성되자
후발 주자인 롯데공업주식회사(현 농심)가 설립되었고, 1971년 소고기라면과 1975년 농심라면을 잇따라 히트 시키면서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사발면,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팔도비빔면, 신라면, 진라면 등이 등장하면서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Q: 시장 현황은 어떤가?
A: 현재 한국에서 판매되는 라면의 종류는 200개가 넘고 시장 규모는 1조9천억 원에 달한다. 주요 업체로는 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농심이 시장점유율 70%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Q: 농심의 독주체제로 굳어진 것 같다.
A: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 10개 가운데 8개가 농심의 브랜드다. 참고로 1위~10위 까지의 순위는 신라면, 안성탕면, 삼양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육개장사발면, 신라면컵, 왕뚜껑, 오징어짬뽕, 신라면큰사발 순이다. 특히 신라면은 1986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다.
 
Q: 최근에는 한국야쿠르트에서 출시한 꼬꼬면의 반격이 만만찮아 보이던데.
A: 한국야쿠르트의 발표에 따르면, 꼬꼬면은 8월 2일에 출시 이후 50여일 만인 지난 9월 22일 현재 1천700만 개 이상을 생산·출고했다. 한달 평균 1천20만 개를 판매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제품 출시 이후 월 200만 개 이상을 판매하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꼬꼬면은 엄청난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현재의 추세 대로라면 출시 1년 만에 10위권 진입은 물론이고, 5위권까지도 노려볼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과 외에도 꼬꼬면의 성공에는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Q: 중요한 의미라니?
A: 1971년 소고기라면 등장 이후 라면 국물은 닭고기 대신 쇠고기 풍미로 바뀌고, 1986년 신라면 이후에는 매운맛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꼬꼬면은 하얀색의 닭국물을 근간으로 맵지 않은 맛으로 승부를 걸었다. 청양고추 성분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이는 매운맛보다는 칼칼함이나 개운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선발 주자인 농심은 이를 외면했지만, 후발 주자인 한국야쿠르트는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꼬꼬면의 성공 여부에 따라 '쇠고기 국물·매운맛·붉은색'이라는 라면의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보다 다양한 제품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Q: 한류열풍 못지 않게 외국에서도 당신의 인기가 높아 보인다.
A: 나는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요흐의 레스토랑에서부터 사이판 해변의 작은 식당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다. 최근에는 라면의 종주국인 일본에서까지 인기가 높다. 특히 신라면의 활약이 눈부시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세계 최대의 업체인 일본의 닛신식품 제품들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세계 70여 개 국에 수출되고 있어 맥도날드나 코카콜라의 아성에도 도전해 볼 작정이다.
 
Q: 한식이 다 된 것처럼 들리는데.
A: 비록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지난 1970년대 이후 나는 완전히 한국에 동화되었다. 이제 나를 당당히 한식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Q: 그러고 보면 당신에 대한 한국인의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A: 국가별 소비량으로 보면 한국은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베트남, 미국에 이어 6위에 머무른다. 하지만 1인당 소비량에서는 수십 년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이다. 솔직히 한국인 치고 나와 관련된 추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있나? 나는 당당한 '국민식품'이다.
 
Q: 보편식이자 간편식인 당신은 비상식량으로도 인기가 높다.
A: 위기의 징후가 포착되면 국민들은 제일 먼저 나부터 사재기를 한다. 1983년 중공민항기의 서울 불시착 때도 그랬고, 1994년 김일성 사망설이 퍼질 때도 그랬다. 물과 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볼 때 쌀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내가 있음으로써 그만큼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Q: 당신을 조리할 때 김치, 계란, 치즈, 청량고추, 콩나물 등이 들어가기도 하고 조리법 또한 수 백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그 모든 현상은 나의 포용력과 범용성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그저 흐뭇할 따름이다. 하지만 우선은 포장지 뒷면에 표시된 '조리법'을 준수하실 것을 권한다. 많은 연구원들이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조리법은 나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Q: 말이 나온김에 김해에서 당신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추천한다면?
A: 인제대학교 입구에 있는 미각분식, 김해의 가장 유명한 김밥집인 김밥일번지, 인스턴트라면으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틈새라면 외동점 등이다. 미각분식은 맛도 맛이지만 용기로 사용되는 양은냄비가 거의 예술품에 가깝다. 김밥일번지에서는 9가지의 다양한 라면을 맛 볼 수 있다. 틈새라면의 대표 메뉴인 빨계떡은 특유의 얼큰한 맛이 묘한 중독성이 있다.
 
Q: 끝으로 껄끄러운 질문 하나. 당신은 때로 영양불균형이나 과도한 나트륨 함량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A: 인정한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고 했다. 균형 잡힌 밥상의 권위를 침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저렴하고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을 때, 혹은 사무치게 그리울 때, 가끔씩 이용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다.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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