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향토음식인 찜국은 대를 이어가며 손맛을 전해오던 음식이다. 하지만 갈수록 추억 속의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수수하면서 깊은 맛을 내는 찜국은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요즘의 세태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다. 하지만 어떤 재료든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성품은 우리땅에서 나는 식재료들이 연출하는 한편의 교향곡과도 같다.
 
논고동찜국, 다슬기찜국, 나물찜국, 토란찜국, 머위찜국, 미더덕찜국 등은 사용되는 주재료에 따라 이름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조리 방식이나 완성된 형태는 거의가 비슷하다. 들깨가루가 맛의 골격을 잡고, 쌀가루로 농도를 조절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남지역의 향토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찜국은 지역의 형편에 따라 사용되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내륙지방에서는 토란대, 머위, 버섯, 고사리 등의 나물류 가 중심이 되는 반면 해안지방에서는 재첩, 다슬기, 미더덕, 조개 등이 중심이 된다.
 
따라서 찜국에는 쇠고기, 다슬기, 대합, 조개, 재첩, 미더덕, 호박잎, 버섯, 숙주, 배추, 고사리, 감자, 토란, 토란줄기, 머위줄기, 도라지, 미나리, 실파, 부추 등 우리의 산과 바다 그리고 강에서 나는 거의 모든 재료가 사용된다.
 
찜국을 만드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재료가 가진 각각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경험과 요령이 필요하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맛을 내기는 쉽지 않은 음식이다. 게다가 찜국은 가마솥이나 들통에 많은 양을 끓여야 제격이다. 그래서 대가족 중심이었던 과거에는 꽤 유용한 음식이었다. 별다른 반찬이 필요없기에 한번에 많은 손님을 대접할 때도 요긴했다.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농번기에는 새참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 각종 해물과 콩나물, 미나리, 부추, 고사리, 방아 등이 조화를 이룬 찜국. 여덟가지 정도의 밑반찬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차려진다.
사용되는 재료나 조리방식을 보면 좋은 음식임에 틀림없는데도 점점 추억의 음식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외식시장에서는 여전히 찬밥신세다. 웰빙, 로하스, 슬로푸드, 로컬푸드 등의 확산과 더불어 찜국이라는 아이템이 한번쯤 각광받을만도 한데도 말이다. 이는 아마도 찜국이 가진 장점 때문일 것이다.
 
찜국에는 파, 마늘, 고춧가루, 후춧가루, 참기름, 설탕 등이 들어가지 않는다. 조미료라 해봐야 조선간장 정도가 전부다. 맵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는 세태에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다. 노련한 외식업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마치 대단한 일인 양 자랑을 하지만, 찜국에는 화학조미료 자체가 필요없다. 찜국은 낱낱의 재료가 내는 듬성듬성한 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여백이 많은 찜국 맛에 화학조미료의 인위적인 감칠맛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다.
 
전혀 다른 형태의 음식이지만 재료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찜국은 비빔밥과 닮은 구석이 많다. 어떤 재료든 사용이 가능하고 그 모든 재료들이 사발 안에서 하나의 소우주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비빔밥은 고추장이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는 탓에 비교적 일찍부터 외식아이템으로 각광받아 왔다. 하지만 맛이 자극적이지도, 색이 화려하지도, 냄새가 향기롭지도 않은 찜국은 갈수록 추억 속의 음식으로 굳어져 간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이는 곧 가능성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때가 올 것이다.
 
김해에서도 찜국은 일상적인 음식으로 먹어왔다. 지역 토박이라면 찜국에 대한 추억 한두 가지 쯤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내륙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김해만의 독특한 찜국도 더러 보인다. 돼지고기 살코기를 넣은 찜국도 있고, 심지어는 개고기를 넣고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복날 개 한마리를 잡으면 마지막 코스는 찜국이었다고 한다. 그 맛이 궁금해 지난 여름 단단히 별렀으나 실패했다. 개고기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농촌의 여름 보양식으로 아주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기자가 아는 한 김해에서 찜국을 상시적인 메뉴로 내는 식당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김해시 외동에 있는 '토란과찜국'이다. 토란국정식과 토란찜국정식 두 가지 메뉴를 번갈아 가며 낸다. 때문에 어떤 날은 토란국이 어떤 날은 토란찜국이 나온다. 메뉴 선택은 오로지 주인장 마음대로다. 그마저도 하루 50인분 한정에 점심 영업만 하는 까닭에 찜국 맛보기가 녹록지 않다. 찜국과 더불어 주인장이 산으로 들로 다니며 직접 채취한 나물로 만든 12가지 반찬 덕분에 단골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집이다.
 
오늘 소개할 곳은 부원동에 있는 '상동추어탕'이다. 부원동, 서상동, 동상동 일대를 다니다 보면 추어탕 전문점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단위 면적당 추어탕집 갯수를 헤아려 보면 아마도 전국 최고가 아닐까 싶다. 낙동강과 김해평야를 끼고 있는 환경 때문일 것이다. 상동추어탕은 추어탕뿐만 아니라 동태탕, 찜국, 옻닭, 엄나무닭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찜국을 찾는 단골이 많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음식이기도 하거니와 찜국 끓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상동추어탕은 우선 상차림부터 칭찬할 만하다. 여덟 가지 정도의 반찬이 깔리는데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른 구성이다. 언제 가더라도 촉촉한 질감과 선명한 색이 살아 있다. 데친 브로콜리 하나조차도 물기가 말라 있는 적이 없다. 생선구이 역시 고등어, 갈치, 조기 등을 번갈아 낸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손님을 위한 배려가 여간 섬세한 것이 아니다. 손맛 또한 뛰어나 듬성듬성 썰어서 만든 연근조림은 연근 특유의 향과 질감이 살아 있고, 고들빼기김치의 삭은 맛은 밥도둑이 따로 없다. 날씨가 좀더 쌀쌀해지면 시원한 굴무침도 일품이다.
 
찜국은 화장기 없는 시골 아낙네를 연상케 한다. 맛을 보기에 앞서 그 소박하고 조신한 모양새에 우선 마음이 끌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지 않는다 해서 함부로 덤볐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전분이 열을 안으로 가두고 있기 때문에 만만히 볼 음식이 아니다. 농도는 제법 되직한 편이다. 너무 묽으면 국이 되고 너무 되면 찜이 된다. 찜국은 찜국 특유의 농도가 있기 마련이다. 이걸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건더기를 건져 밥을 비벼 먹어도, 밥을 넣어 말아 먹어도 될 정도가 적정 수준이 아닐까 싶다.
 
상동추어탕의 찜국에는 다슬기, 바지락, 홍합 등의 어패류에 콩나물, 미나리, 부추, 고사리, 방아 등이 들어간다. 슴슴하면서도 골격이 단단한 음식이다. 들깨가루가 과하게 사용되지 않아 재료 맛과 향이 온전히 느껴지고, 순서를 잘 지킨 탓에 저마다의 식감 또한 살아 있다. 언뜻언뜻 씹히는 방아잎은 자칫 심심할 것 같은 맛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 경험 많고 품이 많이 들어간 솜씨다.
 
▲ 부원동 상동추어탕.
묵직하고 뜨거운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흐르는 질감이 좋고, 옛날 추억이 떠오르는 것 또한 좋고, 전날 술이라도 마셨으면 편안하게 속을 풀어주는 느낌이 좋다. 그 기분에 끌려 밥을 비벼 먹고, 말아 먹다 보면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어느새 뚝배기를 말끔히 비우게 된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영양식으로 손색이 없고 애주가들에게는 해장국으로도 더할나위 없다.
 
맵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지면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이러다 보면 채소나 나물이 가진 본연의 향과 식감을 즐기는 감각까지도 잃게 된다. 찜국은 그 자체의 영양학적 우수성보다도, 잘못 길들여진 미각을 바로 잡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음식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때 초보자는 하이라이트 혹은 독주 등에 매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험 많은 음악 애호가는 곡의 해석과 악장과 악장 사이의 연결 등 거시적인 것은 물론이고 각각의 악기가 내는 소리까지 놓치지 않는다. 찜국은 우리땅에서 나는 식재료가 연출하는 일종의 교향곡과 같은 음식이다. 처음에는 한 덩어리의 음식으로 여겨지겠지만, 자주 접하다 보면 각각의 식재료가 가진 특성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미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감각이다. 우리의 식습관이 제자리를 찾다 보면, 언젠가는 찜국도 인기 있는 외식 아이템이 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당신의 자녀와 함께 찜국 한 그릇 하심이 어떠실는지?
 
▶메뉴:찜국(8천원), 추어탕(6천원), 동태탕(6천원)
▶위치:김해시 부원동 618-13
▶연락처:055-333-8945 (매주 일요일 휴무)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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