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국말을 잘 못하면 아이에게 영향이 크데요. (아이가) 열심히 해도 못 따라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제겐 큰 걱정입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육시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팜 티뎁(Pham Thitiep·27·봉황동) 씨 역시 그랬다. 그는 좋은 엄마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라함(경남이주민문화센터)'이라는 곳을 찾아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그의 목표는 한국어능력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다. 시험에 합격하면 대학에 갈 수 있고 그러면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그의 고향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50㎞ 떨어진 하이르멍(하이즈멍)이다. 그리 유명할 것 없는 시골마을이지만 정(情) 만큼은 한국의 시골마을 못지 않다고.
 
"유명한 관광지는 없어요. 예전엔 주로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 공장이 많이 들어섰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바빠졌죠. 그래도 정 만큼은 넘치는 곳이죠. 한국에선 가까운 이웃끼리도 잘 모르고 지내지만 고향에선 한 가족 같은 분위기입니다. 결혼하고 처음 갔을 때도 마을 사람들이 다 몰려왔죠."
 
고향에서 그의 삶은 단조로웠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오후에 집에 오면 부모님이 다니는 도배(벽돌)공장에서 일을 돕는 게 베트남에서의 그의 삶이었다.
 
그러다 고모의 소개로 남편 정찬(42) 씨를 만났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한국에 처음 왔을 때예요. 남편은 물론 시댁에서 너무 잘해줬어요. 시누이들은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어요. 그래서 불안감 같은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타향만리 삶이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한국말을 배우는 것. "거꾸로 얘기해도 남편은 잘 알아듣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게 쉽지 않잖아요. 제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답답하고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적응이 힘들었는데 아이가 생겼어요. '엄마니까 세상을 피하면 안 되겠다' 굳게 마음먹었죠. 지금도 말을 잘 못하지만 좀 더 자신있게 살려고 노력해요."
 
힘든 순간순간 남편은 큰 힘이 됐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서슴없이 말하는 그녀다. 그는 베트남의 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 2학년 때 중퇴했다. 그런 그가 소개하고 싶은 곳은 바로 하노이다. "하노이에는 가볼 곳이 많아요. 특히 호찌민의 묘지를 추천해요. 아시다시피 호찌민은 검소하게 살면서 국민들을 위했던 지도자예요. 호찌민의 묘지 옆에는 박물관이 있는데 베트남의 어제와 오늘을 엿볼 수 있어요."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잘 끓인다는 두 아이의 엄마 팜 티뎁 씨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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