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의 사회적·경제적 트렌드는 고립화와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가정은 이미 핵가족화의 단계를 훨씬 지나 핵을 이루고 있는 소립자 가족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개인들 간의 관계는 어설픈 정보화에 잠겨 기계적이고 인간적 여운도 없는 침묵의 관계로 변한 지 오래이다.
 
언제부턴가 사회 현상들이 갖가지 숫자로 비유되어 표현되고 있으니 예를 들면 20-80법칙, 80만 원 세대, 58년개띠 등이 그것이다. 또 이와 같은 표현들은 거의가 자조적이고 냉소적이어서 우리 사회의 어둠이 더욱 강조된다. 특히 두드러진 경제적인 현상은 기형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레버리지(지렛대)가 되었으며 얼마 전에 운위되었던 20-80법칙은 이미 1-99법칙으로 대치되고 있다.
 
며칠 전 지난 10·26재보궐선거에서 실제적 아이콘(우상)으로 떠올랐던 안철수 교수가 자신이 소유한 주식 중 1천500억 원을 기부한다고 발표하여 또 한번 우리 사회와 정계를 크게 흔들고 있다. 본인은 양극화로 얼룩진 암울한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환원이라 했으나, 정작 주위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행하는 큰 인물이라는 찬사에서부터 대선을 의식하여 떡밥을 뿌리고 있다는 혹평에 이르기까지 그 평가가 매우 다양했다.
 
올해는 여러 명의 대기업 총수들이 비슷한 규모의 액수를 사회 환원이라는 이름으로 기부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부는 안철수 교수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오히려 부자 감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무마 수단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안 교수의 경우 극단적으로 다른 평가와는 달리 대기업 총수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관심을 끌었으며 미국에서의 차기 대선 주자로 떠오르는 불름버그 뉴욕시장과 묘하게 오버랩되고 있다.
 
성경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구절이 있다. 선행을 함에 있어 오만하거나 또 다른 목적을 깔거나 생색내지 말고 그야말로 선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라는 뜻일 게다. 성경의 많은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그 액수가 크고, 자의건 타의건 기부하는 시점에서의 사회·정치적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갈 때에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여리고성(城)의 나팔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기부 그 자체는 선행이며 우리사회를 이롭게 한다. 기부하는 사람들은 안철수 교수이든, 대기업 총수이든 모두 칭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들에게 딴지를 거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것이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언론에 등장하는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눈을 거두어 필부인 우리 이웃들로 돌려보기로 한다. 우리는 그동안 많이 보았다. 기초생활자가 그가 모은 힘든 돈을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이웃에게 희사하는 것을, 하루 하루의 힘든 생활에서도 땀묻은 돈을 부끄럽고 겸손하게 이웃에 쥐어주는 것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사회관계자본'이라는 개념을 개발한 바 있다. 사회관계자본이란 사회적 네트워크와 거기에서 발생하는 신뢰성, 그리고 보답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이웃들이야 말로 우리사회의 가장 큰 재산인 사회관계자본을 쌓아가는 주인공들인 것이다. 우리 필부들은 노블레스(귀족, 상류층)가 아니고 오블리주(의무) 역시 해당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행을 하면서도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이제 곧 연말이다. 많은 미담들이 소개될 것이며 우리는 잔잔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며 우리 역시 이웃들을 위해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손길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아름답고 축복받을 기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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