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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련한 설빔특별기고
  • 수정 2019.01.30 09:16
  • 게재 2019.01.30 09:15
  • 호수 408
  • 19면
  • 하성자 김해시의원(report@gimhaenws.co.kr)
▲ 하성자 김해시의원

'가난' 이란 말에서 추억꺼리를 술술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하얀 쌀밥이 더 많이 섞인 아버지의 밥그릇, 손님이 오신 날 아버지와 손님 겸상에 얹힌 구운 김 몇 조각이나 자반고등어 한 토막, 할머니 밥상에 매일 올라 있던 달걀찜, 이런 것들을 곁눈질하며 침을 꼴깍 삼켜본 사람들은 그 기다림을 알리라. 우리 눈치를 알아차리고 먹는 시늉만 하고선 얼른 상을 물려주셨던 속 깊은 어른들과 고 어린 욕심을 외면하고 양심도 없이 싹 닦아 잡수셨던 미운 어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초록 끼가 옅어지는 참외나 토마토는 익는 시늉도 하기 전에 우리 남매들 중 누군가에 의해 성급하게 채취되었다. 봄 풋감 줍기부터 초겨울 텃밭 배추뿌리가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먹는 자리를 들락거렸다. 겨울이 되면 어머니가 항아리에 숨겨 둔 감 홍시를 몰래 찾아 먹거나 생 무를 깎아 먹거나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 온기 있는 재속에 묻어 두었다 꺼내 먹곤 했다.

누런 창호지가 매운 겨울바람을 버티다 못해 문 안쪽이 불룩해지면 아랫목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 재치 다 쓰고 서로 이불을 끌어당긴다. '잠 안 자고 뭐 하노?'라는 어머니의 고정멘트가 울리는 한밤중에 하필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한다. 도깨비가 무서운 또래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군고구마 가져오기 심부름한다. 상상력이 무궁하였던 나의 공포는 추위가 아니라 귀신이란 대상이었다. 그 때 나의 번개 같은 동작을 생각하니 아마 세계 스포츠 대회 종목이었다면 틀림없이 금메달감일 것이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하는 짓들을 다 알고 계셨다고 하시며 잘 먹이지 못해 마음 아프셨다고 요즘 말씀하신다. 가난도 유난스럽던 그 때 우리는 왜 그렇게 먹성이 좋아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그럼에도 나는 그 시절 가난꾸러미를 풀어내면 저절로 미소가 난다. 환한 내 얼굴, 내 아이들은 이 행복감을 도무지 모를 것이다.

비싸고 값진 보석이라 해도 자기가 원하는 보석이 아니고, 아무리 물건이 많아도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빈곤하다고 느낀다는 인간심리학 이론을 들은 적이 있다. 가난도 부자도 마음 나름이라지만 넘쳐나도록 풍요로운 물질세상이 다 만족스럽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명절 앞 둔 체감경기를 두고 인심들이 설왕설래 하고들 있다. 

그 시절 한 해 식량 전 재산인 쌀 두 가마니 중에 기꺼이 쌀 한 말 각오했던 어머니의 통 큰 설음식 마련이 존경스럽지만 쌀 소비 둔화를 우려하는 소식이 회자되는 식량 풍요의 시대에 쌀이 전부가 아니라서 음식 장만을 신경 쓰게 된다. 맏이인 나는 설 명절을 앞두고 쌀을 담가 가래떡을 직접 할까 욕심내다가 그냥 방앗간 떡국을 살까보다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런 고민이 명절 증후군 발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 대수이랴! 가족 모두가 즐거워야 최고 명절인 것이다. 

귀성길이 복잡할 것이다. 풍요 속 세상을 헤매다 큰집이라는 둥지로 찾아들 마음들을 위해 나는 정성껏 미소를 준비하려 한다. 환한 얼굴, 미소 가득한 반가움을 설빔으로 장만하고자 한다. 설빔 준비 돌입!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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