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한참 일을 해야 할 때이니 교통이 편한 지역에 집을 구해 살고 있으나, 어쩐지 집 주위에 1년 내내 야시장이 열리고 있는 듯하다. 낮이든 밤이든 조용한 순간이라곤 없지만, 건물만 벗어나면 대중교통편이 코앞이니 그러려니 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씩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과연 나의 '진정한 거처'인지 서글플 때도 있다. 언젠가 보았던, 방을 세놓으면서 '잠만 잘 분'을 찾는 광고가 떠오르기도 한다. 세상을 떠돌다 돌아와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공간에 '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어도 되는 것일까.
 
<조용헌의 백가기행>을 읽으면서 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동양학자이며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한국문화와 정서, 아름다움을 찾아 강호를 누비며 유명인사와 세속에 관심 없는 방외지사들의 삶과 철학을 두루 소개해 온 이다. <백가기행>은 집에 대한 책이다. <사찰기행>이나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등의 책에서 전통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지만, 이 책은 본격적으로 '집'을 말한다.
 
어디에 사는지, 몇 평인지, 그래서 얼마짜리 집인지가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주는 세상이다. 지금이 집을 살 때인지 아닌지, 부동산 가격이 올랐는지 내렸는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떤지가 사람들의 큰 관심사이다. 그만큼 '집'이 중요한 것이다. 편의상이었는지 중요한 순서였는지 알 수 없으나 습관처럼 말해온 '의식주'의 끝자리에 위치하던 '주'를 맨 앞에 내세워야 할 것 같다.
 
돈으로 환산했을 때의 가치가 높다고 했을 때 그 집이 정말 좋은 집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을 보고 있으면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집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도예가 송일근 씨 부부는 전남 담양군 무월리에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12년에 걸쳐 집을 짓고 산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대들보 다듬고, 서까래 구하고, 마루 짜고, 단열과 순환을 생각하면서 지은 집이다. 건축업자들이 보면 공사기간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부동산회사에서 보면 시골집이 골치 아픈 물건일지 모르겠지만, 이 집은 집주인 송일근 씨가 자신의 생명관과 인생관을 담아 짓고 싶은 대로 지은 집이다. 집을 짓다가 손가락이 절단될 정도로 크게 다친 적도 있다는 집주인에게 저자는 "목수도 없이 어떻게 본인 손으로 이러한 집을 지을 생각을 했는가"라고 질문했다. 집주인은 답했다. "사람이 자식도 만드는데 왜 집을 못 만들겠는가!"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는 조선 숙종 때의 학자 명재 윤증의 고택이 있다. 저자는 그동안 다녀본 한옥 중에서 가장 숨은 그림이 많은 한옥의 총체적인 묘미를 지닌 집이라고 말한다. 중요민속자료 190호인 명재고택은 1709년에 명재 선생의 제자들이 십시일반해서 지은 집이다. 제자들이 돈을 내고 아이디어를 내어 지은 이 집에는 생활에 필요한 아기자기한 장치와 배려가 숨어있다. 제자들의 '집단지성'을 반영하느라 집 짓는 목수가 머리 아팠겠지만,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편리했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안채의 여인들이 바깥 동정을 쉽게 살펴 몇 인분의 밥을 지을 지 알 수 있도록 안채 건물 모퉁이의 흙을 높게 쌓았을 정도라니, 오늘날 주부를 위한 아파트 주방공간의 배려를 오히려 무색하게 하는 집이다.
 
이 책에는 재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집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담아내고 있는 집이 있다. 죽도록 일하고 모아서 집 한 채 사는 것이 마치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 같아 허탈할 때 이 책을 펼쳐야겠다. 쓸데없는 욕심에 사들인 물건들을 정리하고 차 한 잔 마실 작은 상 하나만 놓아도 집이 달라지고, 그 안에 사는 내가 달라질 것이라는 깨우침을 잊고 싶지 않아서이다. 




박현주 객원기자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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