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홍 전 김해교육장

종편 사상 기록적인 20%대의 시청률을 보이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종영이 되고도 그 연속극에 출연했던 출연진들이 다양한 분야의 예능프로에 출연하고, 또 많은 TV 광고화면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만큼 이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우리사회에 제기한 문제점은 부모의 '외눈박이 사랑'이다. 3대째 서울의대 집안이라는 찬사를 받기위해 오로지 공부만 외쳐대는 부모가 어디 드라마 속에서만 있겠는가? 자녀들의 의지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상위 1%만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 입시 코디에게 수십억의 돈을 지불하는 입시 지상주의에 매몰된 세상을 비판하던 연속극이 마지막 회에서는 모두들 잘못을 뉘우치는 훈훈(?)한 끝을 맺은 이유도 결국은 돈으로 그네들의 '캐슬'을 더욱 견고히 하려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리라.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읽기와 수학 과학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학습에 대한 흥미나 학습동기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머물고 있는 모순적인 결과를 보인다. 이는 아직도 입시 위주인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도 바뀌고 있다. 오늘날에는 한 명의 창의적인 인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이다. 20세기는 많이 알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인재를 원했지만, 21세기에는 AI, IoT,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으로 기계가 인간의 삶에 들어오면서 기계가 대신 할 수 없는 창의력과 융합능력을 가진 인재를 원하고 있다. 21세기에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져야 최고 인재가 될 수 있다. 안드로이드나 애플 프로그램의 버그 하나만 잡아내어도 수억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넘쳐나는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고, 서로 융합하여 엮을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이다.

예전 우리의 가정이 할아버지부터 손주가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에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배웠고, 삼촌이 아버지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고 형과 아우의 우애와 어울려 사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취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가풍에 따라 자녀 교육도 이루어 졌었다. 하지만 요즈음의 핵 가족제도에서는 그런 점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자녀의 수가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키우는 것이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인지를 몰라 또래끼리 모여 서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내 아이만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우수하게 키우려는 욕심에 잘못하면 연속극 '스카이 캐슬'에서처럼 자녀의 장래를 망치게 되기도 한다.

장난감을 사주면 장난감보다는 장난감 상자를 더 오래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 장난감 사용방법을 가르쳐주려고 애를 쓰는 부모들이 많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놀잇감을 만들어 가면서 놀이를 하게 되면 아이들은 창의력을 키우고, 융합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창의력의 시작은 엉뚱한 발상이다. 당황스러운 질문이라도 아이의 궁금증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아이와 함께 자리를 찾으려는 태도가 아이들의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

자녀의 개성을 살리기 위하여 자녀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부모가 있는가하면, 부모의 기준대로 자녀들이 따라오기를 원하는 부모도 있다. 자녀들의 뜻에 무조건 따라가는 '방임형 부모'가 있는가하면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는 '헬리콥터형 부모'도 있다.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아이들을 방임하면 안 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하여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경우 조언 할 수 있는 '인공위성형 부모'가 되어야 한다.

자녀들의 교육방법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 내 아이의 교육을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를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녀 훈육을 할 때 한 발만 물러서서 내가하려는 이 교육방법을 다른 부모들이 볼 때 자녀교육을 잘한다고 부러워 할 것인지, 아니면 잘못한다고 혀를 찰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자녀 교육방법의 오류는 쉽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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