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혜정 시조시인

며칠 전 방시혁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순위를 기록했다. 서울대 총장이 직접 부탁하여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탓이리라.

방시혁 대표는 세계적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기획자이다. 주로 정·관계 인사가 맡던 서울대 축사에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가 연설을 하게 된 것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모양이었다.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의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해 5월 빌보드지가 선정한 세계 음악 시장을 움직이는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International Power Players)'에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빌보드는 방시혁 대표가 프로듀싱한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 승 '허( LOVE YOURSELF 承 'Her')’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160만장 이상 팔렸으며, 한국 그룹 최초로 빌보드 200 TOP 10안에 이름을 올렸고 앨범 타이틀 곡 DNA는 Digital Song Sales 37위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서울대 미학과를 나온 그가 어떻게 음악 프로듀서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공부를 잘 하면 당연히 법대를 가던 1980년대 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의 그는 어떤 열정도 꿈이 없었다고 한다. 대학을 가서도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다 보니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조리한 것과 맞서 싸우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애쓰다 보니 오늘날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이 되었단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런 아들을 믿고 기다려준 방시혁의 어머니가 있었다.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님이 쓴 ‘내 친구 명자’라는 글에 의하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쁘장했던 명자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공부를 잘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에 합격했지만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두 남매를 키우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친구였던 송명견이 어느 날 명자 집에 갔더니 당시 고교 1학년생이던 아들이 엄마 친구가 왔다며 기타를 연주해 주었다. 기타를 끼고 살던 그 아들은 법대를 외면하고 자신이 원하던 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 아들 진학 문제로 할아버지께서 한 달 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법대를 고집하시고 아들의 고교에서도 마지막까지 법대를 종용했지만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아들 손을 들어준 사람은 엄마인 명자였다고 한다. 아들은 대학 시절부터 작곡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행복해 했으며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준 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내 친구 귀자가 있다. 귀자는 어릴 적에 얼굴이 뽀얗고 목소리가 예뻤는데 우리는 잠시 마당 넓은 곳을 가운데 두고 한 집에 살기도 했다. 일곱 살인가 되었을 때 귀자는 이사를 갔고 고등학교 때 진학한 여고에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그 당시 만화에 푹 빠져서 매일 같이 공부 시간에도 노트 하나를 꺼내놓고 만화를 그려 가면서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들의 기습 질문에도 대답을 잘해서 선생님들은 그녀가 수업 시간에도 만화를 그리는 것을 묵인해주고 있었다. 친구들은 귀자가 좋아하는 만화를 계속 그리기 위해 밤새워 미리 공부하고 온다고 했다. 그런 귀자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당시 인근의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지 못해 국어교육과에 들어갔다고 했다. 귀자는 2학년 땐가 3학년 때 대학교를 자퇴했다. 1년 정도만 참으면 국어교사가 되어 안정된 인생이 보장되는데 그녀가 사범대학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에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안타까워했다.

세월이 몇 십 년이나 흘렀을까? 몇 년 전에 나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오늘의 인물’로 선정이 된 그녀를 보았다. 조금 나이가 들었지만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그녀는 틀림없이 내가 알고 있는 내 친구 귀자였다. 이름도 필명으로 바꾸고 만화가가 된 그녀는 1980년대 당시 졸업과 동시에 교사가 보장되었던 사범대학을 그만두고 만화가의 길로 걸어가 그렇게 '오늘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그린 만화는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고 어떤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아마 내 친구 귀자에게 교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녀는 어쩌다 보니 되었다고, 좋아하는 것이 만화다 보니 만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웃으며 대답 할지 모른다.

세계적인 시인인 미국의 칼린 지브란(Kahlil Gibran)은 《예언자(The Prophet)》에서 “일은 사랑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혼을 불사르면 잠자던 영혼이 눈을 뜨고 그 순간부터 갑자기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쉬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애써 원대한 꿈을 품지 않아도 즐겁게 일하다 보면 길은 열린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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