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이다. 나의 주인은 나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내가 하는 일은 500가지가 넘는다. 주인이 아무리 폭음을 하더라도 나는 며칠만 쉬고 나면 원상태가 되는 오뚝이 같은 회복력을 소유하고 있다. 설령 나의 75%를 잘라낸다고 하더라도 4개월만 지나면 원래 크기로 다시 되돌아오는 나는 간이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월간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연재건강기사 코너 '인체의 여행'에 실렸던 내용 중 한 토막이다. 간의 특징을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간은 주인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수많은 일들을 하며, 어지간한 혹사쯤은 이겨내고 시간만 지나면 원래의 건강한 모습을 금새 회복하는 참 기특한 장기이다.
 
하지만 이런 간도 해마다 12월이면 각종 송년회와 연말모임들 때문에 여간해선 버텨내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12월의 술자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술을 마시면서도 건강을 챙기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알코올 도수 낮은 술을 마셔라
독한 술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시고 가능한 한 적은 양을 마시도록 노력해야 한다. 술은 천천히, 물과 함께 섞어 마시고 매일 조금씩 마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번에 많이 마신 뒤 며칠 간 금주하는 게 오히려 간에 부담을 적게 준다. 과음 후에는 간의 해독 능력을 고려해 2~3일은 금주를 하는 것이 좋다.
 
김해한사랑병원 전형곤 정신과 과장은 "술에 대한 간의 해독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적당량의 주량을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루 60g 이하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이 최적인데 맥주 1500㏄(7.5잔), 소주 350㏄(1병), 위스키 156㏄(5.2잔) 정도"라고 말했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남성에 비해 여성의 알코올 농도가 더 높을 수 있다. 이는 알코올과 친화력이 큰 지방질이 남성보다 많으며 세포조직들의 수분 함량이 남성보다 높아 알코올로 인한 해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했을 때 체구가 적은 사람이 큰 사람에 비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전형곤 과장은 "술이 잘 받는 사람이건 잘 받지 않는 사람이건 섭취한 총 알코올 양에 비례해서 인체가 파괴된다"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술로 인한 해로운 독이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음주 전 배를 채워라
연말 회식이나 모임이 퇴근 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빈 속에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빈 속일 경우 위에서 간으로 직접 전달된다. 하지만 배를 채운 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음식물과 함께 장으로 흘러내려가 농도가 낮아진 후 간에 전달된다. 따라서 음주 전에는 반드시 식사를 하거나 다른 것으로라도 뱃속을 든든히 해 두는 것이 좋다.
 
폭탄주나 1차 소주, 2차 맥주 등으로 술을 섞어 마시면 빨리 취한다는 속설은 정설이다. 인체가 가장 잘 흡수하는 술의 도수가 14도 정도인데 이는 맥주와 순수 양주를 섞어서 마시는 폭탄주의 도수와 비슷하다.
 
담배 또한 술에 더 빨리 취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담배 속 니코틴은 위산과다를 일으키고 위벽의 혈류를 나빠지게 하는데 알코올은 이 같은 니코틴의 흡수를 빠르게 하기 때문이다.
 
■ 숙취해소와 건강한 음주법
알코올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고 인체에 남아 있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고 뱃속이 뒤틀리는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이 모든 증상들을 총칭해 숙취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숙취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알코올이 몸에 들어오면 10%가량은 신장과 폐에서 배출되지만 90%는 간에서 대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음주량이 많으면 알코올의 독성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분해되지 않고 인체에 남아서 두통, 현기증, 근육통, 메스꺼움, 구토 증상 등을 느끼게 한다. 또한 과음을 하면 탈수나 전해질 균형의 파괴, 저혈당 상태가 되며 이러한 증상들이 상호 작용해 숙취가 발생한다.
 
전형곤 과장은 "간의 해독능력을 초과해 발생한 숙취는 결국 간이 아세트알데히드를 대사할 때까지 시간이 지나야 해소된다"며 "결국 숙취를 해소하는 특별한 비책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체내에 남아 있는 알코올 성분을 배출시키는 따듯한 차나 비타민·무기질이 많은 과일주스나 이온음료를 마시면 전해질 불균형과 탈수를 막아 숙취의 악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술을 깨기 위해 일부러 구역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일시적인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오히려 강한 위산만 역류시켜 식도를 손상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게 되니 절대 삼가야 한다.
 
연말 과도한 음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량 내에서 마시기 △배를 채운 뒤 술을 마시고 안주를 든든히 챙겨 먹기 △술자리 담배 자제 △탈수를 불러 심장에 무리를 주는 음주 후 심한 운동과 목욕 삼가 △감정적으로 괴로운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더 많이 마시고 더 빨리 취하게 되므로 몸과 마음이 양호한 상태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 습관 기르기 등을 생활화해야 한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조절력이 결핍돼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있는 질병 상태가 되면 이를 의학적으로 알코올 의존상태라고 부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연말 잦은 술자리 시즌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한해를 밝고 건강하게 시작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도움말 = 전형곤 정신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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