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는 영웅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을 들여다 보면 한 마디로 위대한 지도자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안철수 신드롬이 그 단적인 예다.
 
권력에는 언제나 책임이 뒤따르며 무한책임을 지닐수록 그 힘이 극대화된다. 국민의 종을 자처하며 책임지겠다던 사람들이 모여 정치군단을 이루지만 고래고함을 지르면서 싸우는 통에 새우들은 등이 터지다 못해 싹쓸이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을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도록 하기 위해 정치가 존재하건만 작금의 국민들이 느끼는 빈곤과 소외감은 어찌된 일인가?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떠드는 대국민 홍보도 이젠 한갓 선전문구처럼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국민들의 체감 경기는 맨밑바닥 수준이다. 부의 편중은 날로 극대화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신들의 이권 다툼에 정신이 팔려 국민들 눈치도 볼 겨를이 없는 지경이다. 이런 배경에서 홀연히 나타난 안철수야말로 얼마나 신선한 바람이겠는가?
 
전 재산을 헌납하며 돈보다는 명예를 존중하는 안철수의 '선비정신'을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흠집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논리는 참으로 보기에 민망하다. 설령 그가 추구하는 명예의 끝이 대통령이라 해도 우리는 그러한 영웅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그 명예는 개인의 영달보다 더불어 잘살기를 바라는 명예가 아니겠는가.
 
이제 정치야말로 겸허해야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깊게 내려다볼 줄 아는 독수리 눈을 가져야 한다. 어찌된 판인지 위로 올라갈수록 햇빛에 눈이 멀었는지 아래를 볼 줄 모른다. 정치인들은 태양을 향해 겁없이 날아 오르다 녹아내린 이카루스의 날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입바른 소리로 한몫하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정치판은 밖에서 프레시(fresh)한 사람이 들어와도 망가지게 돼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정치판에 들어 와도 이들을 이지메(집단 따돌림)하고, 키워주지 않는 게 정치판이다. 밑에서부터 커 올라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신비주의로 등장해 반짝한다고 해서 (나라를) 맡길 수 있나." 이 말은 두 가지를 함의하고 있다. 첫째, 대한민국 정치판은 구조적으로 병들어 있다는 점. 둘째, 그러한 병든 정치구조에 잘 적응해야 살아남아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병든 정치풍조를 단적으로 잘 드러내 주었다.
 
이 지경에 처한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안철수 신드롬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반증해 주고 있다. 기성 정치에 식상해진 국민들은 이제 전혀 정치인 같지 않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정치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이전 정치로 인해 생긴 상처를 잊게 해줄 만큼 새롭고 건강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국민들은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안철수도 어찌 완벽한 인간이겠는가. 죄다 속력을 내고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홀로 안전속도를 유지할 수만은 없는 이치이다. 앞으로 '안사모'니 '박사모'니 하며 두 진영이 피터지게 싸우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진정 안철수를 사랑한다면, 진정 박근혜를 사랑한다면, 아니 진정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는 대신, 맹목적인 광신집단의 싸움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야 안철수와 박근혜를 사랑하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진정 새로운 정치판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그러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과 틀이 절실히 필요한 새로운 정치구조 조정의 시점이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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