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동상동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근로자 쉼터는 문띠아닝시(37) 씨가 일하는 직장이다. 평일에는 한적한 모습이지만 주말 저녁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주 타깃으로 하는 만큼 이곳에서는 각종 인도네시아 제품들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과자 등 간식거리에서부터 술안주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문띠아닝시 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곳에서 일한다. 손님이 오기 전엔 각종 요리 준비를 하고 손님이 많은 시간엔 서빙 등 장사를 도맡아한다. 쉬고 싶을 때 하루 이틀 쉴 수도 있지만 딸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휴일을 마다하고 일을 한다. 4살 딸에게만큼은 고생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문띠아닝시 씨는 지난 2007년 한국인 남편을 따라서 처음 한국에 왔다. 행복하고 싶다는 꿈을 좇아 낯선 땅에 둥지를 틀었다. 월세집에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하나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남편의 교통사고를 알리는 전화였다. 트럭운전사였던 남편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낯선 땅엔 문띠아닝시 씨와 갓 태어난 딸아이만이 남았다. 시댁 가족들이 있었지만 문띠아닝시 씨는 딸을 부양하는 등 혼자서 가정을 꾸려가야 했다. 막막함에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았고 그때를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난다.
 
"한국에서 너무 속이 상한 일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힘을 내야 하니까 울면 안돼요."
 
남편이 없는 한국 생활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의지할 곳도 도움 받을 곳도 찾기 어려웠던 그는 한국어 공부 역시 그만둬야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의사소통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편과 살았던 산청을 떠난 문띠아닝시 씨는 2년 전 김해에 왔다. 그리고 지금의 직장에서 일하며 여성가장으로 당당히 살고 있다.
 
"일을 해야 하니까 삼천포에 있는 다섯째 언니에게 딸아이를 맡겼어요. 2시간 거리인데 자주 만나지는 못해요. (딸아이가) 아직은 어려서 아빠를 찾아요. '아빠 어디 갔냐'고 묻곤 해요…. 마음이 너무 아프죠."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상처받은 마음도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의 주변사람들은 문띠아닝시 씨에 대해 "늘 밝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문띠아닝시 씨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김해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가게를 차리고 싶어요. 제가 인도네시아 음식과 홍콩음식을 제법 잘 하거든요. 그런데 돈을 많이 벌어야 해요. 가게세(임대료)가 워낙 비싸거든요. 먼 미래 얘기 같긴 해도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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