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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삶으로 근대사 그려낸 소설가문학의 향기 - 박경리 문학관
  • 수정 2019.05.08 09:43
  • 게재 2019.05.08 09:18
  • 호수 421
  • 11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평사리 언덕에 마련된 박경리 문학관 전경.

고난으로 이어진 근대사를 민초들의 삶을 통해 그려낸 소설 토지. 나라가 기울던 1897년 음력 8월 한가위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이 땅에서 숨 쉬며 살다간 사람들의 사연을 이야기로 꾸며낸 '토지'의 작가 박경리를 소개하는 문학관은 소설의 주 무대였던 경남 하동군 섬진강변 평사리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리산 기슭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던 벚꽃이 꿈결처럼 사라진 늦은 봄. 강변도로를 달려서 찾아간 평사리 토지 마을 입구에는 '박경리 문학비'라고 적힌 바윗돌이 세워져 있다.
 
문학비 뒤편으로 소설 토지에 그려진 모습을 민속촌으로 꾸며놓은 마을 길을 걷다 보면 '박경리 문학관'이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로 지은 건물에 검은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으로 단장한 박경리문학관, 마당에는 굵은 뿔테 안경을 쓴 작가의 모습을 재현한 구릿빛 동상이 서 있다.
 

▲ (좌)마을 입구에 세워진 문학비. (우)문학관 마당에 세워진 작가의 동상.

"1897년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면서 기뻐서 날뛴다. 고개가 무거운 벼 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새 떼들이 모여서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나라 잃고 땅에서 쫓겨난 농민
만주 벌판 떠돌다 돌아온 사연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소설 무대
섬진강변 들판에 바라보는 문학관 

손때 묻은 재봉틀과 치마저고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

 

한없이 평화롭게 그려진 대하소설 토지의 첫 무대 평사리.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세워진 동상이지만, 정작 작가는 박경리는 한 번도 평사리를 다녀간 사실이 없다고 했다.
 

소나무 향기가 물씬 풍기는 문학관 벽면에는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시절,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그 무렵 시대 분위기를 작가는 한 편의 '시'처럼 감성적인 언어로 그려냈다.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 준다."
 

▲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사람들.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얼굴을 그려놓은 벽화가  걸려 있다. 주인공 최서희와 김길상을 중심으로 별당 아씨와 김환, 윤 씨 부인, 최서희의 약혼자였던 이상현과 김길상을 사랑했던 봉순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21명의 모습을 화가 권민호가 그려낸 작품이라고 했다.
 

▲ 박경리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전시실 중앙에는 작가 박경리가 살다간 발자취와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연보가 걸려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작가는 아버지가 네살 연상이었던 어머니를 버리고 새장가를 드는 바람에 사실상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 이후 작가는 스무 살 때 결혼한 남편 김행도가 4년 만에 터진 6.25 전쟁으로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세 살 된 아들마저 숨을 거두는 아픔을 딛고 스물아홉 살 때 쓴 소설 '계산'이 작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으면서 문단에 얼굴을 내민다. 그렇게 시작된 박경리의 작가 생활은 '김약국의 딸들'과 '파시'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마흔세 살 때 불후의 명작 '토지'의 첫 문장에 연필을 들이댄다. 이후 박경리는 무려 26년 걸쳐서 대하소설 '토지'와 씨름하는 동안 하나밖에 없는 사위이자 시인인 김지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사형을 선고를 받고 자신은 위암 3기로 수술을 받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연이 이어진다.

전시실 맨 안쪽에는 작가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이 놓여 있다. 손수 옷을 지어 입었던 재봉틀과 치마저고리. 작가가 직접 쓴 육필 원고지 앞에 놓인 만년필과 찻잔….
 
유품 옆에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으로 홀가분하다."던 작가의 어록이 걸려 있다. 2008년. 여든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과 함께.
 

▲ 작가가 남기고 떠난 유품들.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감. 전시실 끄트머리에 거려 적혀 있는 어는 문학 평론가의 글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작가 박경리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문학 정신은 높은 하늘을 영원히 날아다니는 큰 새가 되었다."

김해뉴스 하동=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9.
△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섬진강대로로 갈아타면 된다.
△ 약 2시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6시.(3~10월)
    오전 9시~오후 5시.(11~2월)
② 매주 월요일은 휴관.
055-882-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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