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순재 김해성폭력상담소장

국도를 달리면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날들이 많은 '또 5월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현실자각너머로 눈에 들어오는 장면마다 초록의 멋스러움이 명화처럼 와 닿아 탄성을 질렀다. 연한 잎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가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늘 삶에 바쁘다는 핑계로 계절에 무관심한 채 살아온 날들이 몇 해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아름다운 5월, 가정의 달에 가족의 소중함도 새롭게 느껴보고, 가족구성원 간의 관계와 더불어 이웃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잠시, 오래 전부터 살갑게 지내오던 후배가 한동안 연락을 끊더니 정말 오랜만에 소식을 전한다. 전화를 받자마자 통화가 괜찮으냐고 조심스레 묻는가 싶더니 이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목소리와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남편과의 갈등상황을 전한다. 비난과 욕설이 오가고 마개를 따지 않은 꽤 비싼 와인 병을 현관으로 던져 산산조각 내며 거실가득 핏빛으로 물드는 일이 벌어졌고... 왜 그래야 되느냐고 악을 쓰며 분노가 쏟아진다. 가정폭력이다.

지난 해 10월 서울 강서구 주부 살해 사건은 '우리 아빠를 사형시켜 달라'는 두 딸의 호소로 세상에 알려졌다. 흉기로 수차례 찔려 피살된 여성의 가해자는 전 남편으로 드러났다. 가정폭력이다. 이혼한 뒤 전 남편의 폭력을 피해 다녔다. 피해여성은 공포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거주지를 옮겨가며 숨어 다니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어 12월 경남 양산시에서도 이주여성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 가정폭력이다. 결혼이주여성 중에는 가정폭력을 경험하면서도 낯선 이국땅에서 남편 외에는 마땅히 의지할 사람이 없어 피해가 있어도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침묵은 가해자의 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는 피해자에게도, 가정폭력을 근절하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폭력은 범죄이다. 범죄가 집안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가정 내 문제로 축소되거나 해석이 달라질 수는 없는 문제이다. 밖에서 폭력이면 안에서도 폭력이다.

가정폭력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 또한 가정폭력은 여성에게 집중되고, 경험되는 대표적인 폭력이다. 개인이나 가정의 고통을 넘어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갖기 시작해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의식하게 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다. 법이 제정되고 시행이 된 지 20년이 넘었고, 가정폭력이 부부 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칼로 물 베기' 식의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다가 가정해체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사회문제로 확산됨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권의 문제로 읽혀진 것도 이 시기이다. 가족구성원 간에 발생하는 가정폭력은 대상이 주로 사회?경제적 약자라는 특성을 갖는다. 피해자 대부분이 아동이나 여성, 노인이라는 것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가정폭력은 피해자의 삶과 인권이 유린되고 파괴되는 것은 물론, 이웃이나 주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가정폭력이 개인이나 한 가정만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정폭력의 원인은 '맞을 짓'이 아니라 가해자의 폭력성에서 찾아야 한다. 가정폭력의 원인은 '술'이 아니라 술에 가려진 가해자의 난폭성이다. 가해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폭력의 원인은 전적으로 가해자의 책임이다. 가정폭력이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웃의 가정폭력에 무관심하지 않아야 한다. 이웃의 작은 변화와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혼자서는 해내기 힘든 일이라도 이웃이나 주변인의 지지가 있으면 더 잘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지지자 효과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개입으로 연대하여 가정폭력을 근절하는 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지는 '우리'가 되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1년에 단 한 달, 5월만이라도 가정폭력이 없는 평화의 달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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