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를 상상해 보셔요. 동일한 길이의 바퀴살들이 축을 중심으로 뻗어나가고 이것들이 연결되어 바퀴가 됩니다. 수레바퀴는 중심축과 바퀴살, 그리고 이어주는 줄이 모두 함께 균형을 이룰 때 굴러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레바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이나 원리, 운명 같은 것과 관련지어 이해되고 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1906)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한 소년의 인생과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서정적인 소설입니다. 헤세는 평생에 걸쳐 '진정한 자아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집안의 전통대로 목사가 되려 했지만 이후 신학교에서 뛰쳐나와 시계수리공, 서점 점원 등을 전전하며 소설가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은 '수레바퀴 아래서'를 비롯하여 '데미안', '지와 사랑', '싯달타', '유리알 유희' 등의 작품에 배어 있습니다. 인생과 청춘, 꿈과 낭만, 감성과 이성의 문제를 헤세만큼 풍요롭고 아름답게 다룬 작가도 없을 것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에는 온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수재인 한스 기벤트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뒤에서 힘차게 밀어주는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힘입어 한스의 수레바퀴는 일류 엘리트 코스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한스는 다른 길을 선택할 의지도, 바퀴를 멈추게 할 힘도 없었습니다. 결국 바퀴의 속도를 견지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 또한 한스처럼 촉망받는 아이로 좌절과 실패를 모른 채 자랐습니다. 그러나 대학진학을 앞두고, 나를 감싸던 자아와 인생의 길에서 방황과 시련을 맛보았습니다. 그 때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주었던 책이 바로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일방적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몰고 가던 부모님과 선생님을 무조건 탓하며, 나만 피해자라고 자해하던 시간을 반성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지를 향해 탄탄대로를 걸어간다고 해도, 현재의 순간순간에 기쁨과 설렘이 없다면 그것은 진짜 길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오늘이 단지 미래를 위한 수단이며 도구로만 존재한다면, 행복한 길이 될 수 없습니다. 내일이 온다는 말로 오늘의 불행을 감추기보다는, 오늘을 행복하게 채워가면서 내일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부비며 식구들의 아침을 준비하는 것,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열심히 봉사하는 것, 책을 골라 읽는 것,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 노력하고 성취하며 기뻐하는 것. 이 모든 순간과 선택이 모여 인생이라는 길, 운명이라는 수레바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와 힘을 다소나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처음부터 악당이나 위인으로 결정된 사람은 없습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길이 보이고, 나의 선택과 태도에 의해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모습을 살펴 봅니다. 환경이 만들어준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바퀴의 관성으로 그냥 돌아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 정연화는
정연화는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른이 될 즈음 가정을 이루면서 김해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어린이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로 지내던 중, 평생교육원에서 수지침사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지금까지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새마을문고회의 지역구 회장과 U.보라 작은도서관 관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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