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권 시인

저기 아련한 기억이 걸어온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 아이 집이 보인다. 담벼락에 얹어놓은 내 마음도 보인다. 어둠의 솔기가 터지면 하얀 목소리가 잘록하게 번지는 곳에 그 골목이 있다. "친구야 놀자"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귀가 커지는 곳이다. 말뚝 박기, 비석치기, 술래잡기 등, 종일 놀이가 밥인 아이들의 판이 자라는 곳이다. "밥 먹고 놀아라" 하는 어머님 말씀에 약속이나 한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곳, 골목은 주인이 없다. 노는 아이들의 자리인 것이다.

골목은 주거지의 개방공간으로, 주민의 생활공간이면서 지역 정통성을 유지시켜 주는 곳이다. 골목에서는 다양한 공동체적 문화가 자라고 있다. 이러한 골목이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도시화 정비, 택지개발로 인하여 골목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곡선이 직선화되고, 돌담이 회색벽돌로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도 사라지고 담벼락을 타고 놀던 고양이 눈도 사라졌다.

요즘 지자체는 지역특성화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차별화된 문화를 개발하면서, 이로 인해 주민에게도 수익창출이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해시내에도 재미난 이야기들이 살아 있는 골목이 있다. 도시 재생의 길로 재탄생한 회현동 봉리단길을 비롯하여, 그 옆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동상동 시장골목, 외국인 거리 등 다양한 형태로 변모한 김해전통의 아름다운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이 골목에서는 골목을 가득 채웠던 정겹고 따뜻한 목소리가 지금도 살아있다. 아버지의 비틀거리던 노래가 박힌 초입부터 보이지 않는 뒷담 출구까지 걸어가면 화물자전거에 실린 삼립빵 상자들, 그 빈 상자 속에서는 구수한 빵 냄새가 무음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회현동 골목에는 죽지 않는 신들의 이야기도 남아있다. 어느 집 앞을 지나면 대나무가 흔들리고 여우 꼬리에 달린 요령소리가 천년을 타고 건너온다. 해가 지고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면 뒷걸음질로 달려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다가 마실 나온 할머니를 만나면 할머니 치마 속으로 얼른 숨어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아직도 골목은 그 소녀를 숨겨놓고 있다. 가끔씩 조용한 표정의 골목은 한번 돌아보았을 뿐인데 소년의 얼굴은 붉어진다.

골목에서는 시가 흐르고 음악이 흐르기도 한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는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과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서상돈 선생 고택이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대구시는 이 골목에서 시 낭송과 연주회를 열었다. 결코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았다. 작은 골목행사였지만 모인 사람들의 표정만큼은 평온하고 밝았다. 이것이 골목이 주는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공연장에서는 형식과 격식을 갖추어야 하겠지만 골목에서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다. 담장 넘어 이웃집 구경하듯이 일상에서 익숙한 모습그대로 찾아올 수 있고, 찾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 생활 속에 골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문화도시라는 기치를 거창하게 걸어놓고도 관객의 외면으로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골목길 작은 문화도 잘 개발하면 더 없이 훌륭한 예술문화가 탄생하는 것이리라. 문만 열고 나가면 순수예술이 펼쳐지고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예술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도 말 못하는 어른들,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이 골목을 걸어간다. 장미가 살고 있는 담벼락에는 가시에 찔린 흔적이 수북하다. 아직도 찾지 못한 술래가 되어 눈을 감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크게 외쳐본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골목은 흐물거렸고 자전거방 빈 점포는 바퀴가 빠진 채 굴러가고 있다.

이 골목을 걸어가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놀이를 혼자 하고 있는 골목에서, 치렁치렁 늙어가는 낙서 옆에서, 누가 볼세라 살짝 숨어서 오줌을 누고 간다. 발소리가 잦아들고 개 짖는 소리가 멀어진다. 나는 다 자란채로 지금도 그 골목에 심어져 있다. 나만 따라오던 달의 골목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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