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얼마 전 소형 가전제품 하나를 구입했다. 품질과 서비스 혁신을 내세운 진취적 경영으로 꽤 알려진 기업이라 믿고 선택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구성품 하나는 불량인데다 사용설명서는 필요한 안내가 누락되거나 미흡해 쓸데없는 불편을 야기하는 측면도 있었다.

불량품 교환과 불만사항 접수를 위해 'A/S 및 제품문의(고객상담실)'라 적힌 '대표번호' 1577-****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 연결 전 거치는 짧지 않은 ARS 멘트에 이어지는 기다림, 그리고 전화번호를 남기거나 끊어달라는 통보만 남긴 채 일방적으로 끊기는 전화, 어이없지만 될 때까지 다시 걸 도리밖에! 겨우 상담원과 연결된 순간, 문득 얻어들은 정보가 떠오른다. 혹시 이 전화 '유료'인가요? 그렇단다. 갑자기 화가 치민다. 사용자 과실이 아닌 제품 불량 및 불만(기업 과실) 때문에 전화하는 수고로움과 시간낭비도 미안해야 할 마당에, 왜 그 비용까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하나요? 정해진 회사 내부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단다.

기업의 부당한 횡포이므로 책임자의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항의해보지만, '담당자통화불가' 답변만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끈질긴 요구 끝에 마지못해 민원담당팀장급이 전화를 걸어오더라도, 녹음기 틀 듯 똑같은 말만 되뇌는 대리자가 바뀌었을 뿐 진짜 책임자가 나서 적극적 응대를 하는 법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소비자는 답답해 속이 터지거나 철옹성 같은 '불통의 벽'에 계속 부딪혀 제풀에 지치고 만다. 자기 선에서 해결 안 되는 걸 해결하려니 연신 미안하다며 동어반복 대답만 해대는 상담원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알지만, 상대해주는 사람이 그들뿐이니 엉뚱한 대상에게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 너머는 때로 구중궁궐보다 더 닿기 힘들게 느껴진다.

그간 상담을 받거나 AS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15, 16, 18번으로 시작하는 '발신자(소비자) 요금부담' 관례가 부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고, 이에 과기부에서는 14번으로 시작하는 '수신자(기업) 요금부담' 대표번호 서비스를 지난 4월부터 개시했다. 그러나 강제성 없는 기업의 자발적 동참이 관건인 만큼, 결국 기업이 당연히 부담해야 할 몫을 여전히 기업의 양심적 선택에 맡겨둔 형국이며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의 몫으로 남는다. 아직도 내부 규정 운운하는 기업들은 몰라서 못 하는 건가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건가?

한편 고객을 직접 대하는 '감정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비인격적 폭언이나 욕설'도 당연히 사라져야겠지만, 구조적으로 그들을 그런 위험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업의 이중적인 위선적 태도'가 더 큰 문제다. 고객한테는 '가족'처럼 대해 달라 요구하면서, 정작 그들을 앞세워 '모든 걸 감당하게' 만드는 건 바로 기업의 책임자들인 경우가 많다. 다 알지도 답하지도 못할 온갖 것에 죄송하다 말해야 하는 그들을 방패삼아 비겁하게 숨어서는 책임을 떠넘기는 게 가족에게 할 짓은 아닐 것이다. 고객은 왕이 아니며 결코 왕이어서도 안 된다. 고객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책임자가 가림막으로 나서 단호하게 대처하고, 고객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성가시더라도 책임자를 찾아 명확한 답변을 하는 게 예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당에 따른 '책임 소재'를 분명히 정해두고 탄력적인 협력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기업들이 '고객만족'보다 '업무 편의성과 효율성'에 기준을 두고 '불특정성과 대표성'의 가면 뒤에 숨어 쉽게 책임을 회피하려드는 한, 소비자나 감정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요원하다. 디지털사회를 향해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니며 존중받길 요구하는 한 인간이라 외치던 다니엘 블레이크의 조용한 절규가 울림으로 메아리치길.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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