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역사교사모임 소속 현직 교사들
 2005년부터 10년간 경남지역 답사
'21세기 경남 인문지리지'만들어
 국가 중심의 거대 서사만이 아니라
 우리가 뿌리 내린 지역의 역사 집필


 
경남 진해 웅천은 조선 전기부터 도자기 유통과 소비가 활발했다. 좋은 흙과 땔감, 물, 가마를 만들 수 있는 적절한 구릉지, 제포항, 웅천읍성 등 여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특히 제포항은 삼포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로 왜관과 일본인 마을이 있던 곳이다. 이곳을 드나드는 일본인들은 일본의 차(茶) 문화 발달과 일본에서의 조선 도자기 열풍과 맞물려 일찍부터 웅천 도자기를 이곳 제포항을 통해 사갔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다소 거칠지만 소박하고 간소한 미를 지닌 웅천 도자기를 애호했다.
 
임진왜란 때 진해 웅천의 도공들은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러한 배경에는 당시 발달한 일본의 차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일본의 지배층인 사무라이들은 차 애호가였고 다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다도구는 환금성이 높은 재산으로 가치가 높았다. 일본 차 문화의 발달이 조선 도공을 납치 1순위 대상자로 만든 것이다.
 
<경남의 기억을 걷다>는 경남 역사교사모임 회원인 현직 교사들이 경남 각 지역을 답사한 결과를 담아낸 '21세기 경남의 인문지리지'다. 필자들은 풍부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벚꽃 피는 식민도시, 한국 해군의 요람이 되다(진해)' '뭍이 되어 버린 섬, 섬을 기억하다(거제)', '전쟁의 아픔에서 평화를 생각하다'(통영)', '숨겨진 보물 같은 지역을 보다(고성)' 등 경남 20개 시군에 얽혀 있는 역사의 시간을 찾아다녔다.
 
저자들은 2005년부터 10년간 경남의 내륙과 해안 지역을 두루 답사했다. 그 뒤 5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엮은 이 책에서는 저자들의 탄탄한 필력과 풍부한 역사 지식을 엿볼 수 있다. 국가 중심의 거대 서사만이 아니라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의 역사에 대한 고민과 관심을 갖고 집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이 소설 속 허구 공간이 현실로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평사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풍천 노 씨와 진양 강 씨의 집단 주거 지역이었다. 그러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박경리 작가가 이곳을 먼저 와보고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소설을 완성한 뒤 이곳을 방문해 소설 속 배경 무대로 이보다 더 적격인 곳은 없다며 오히려 감탄했다고 한다. 하동군은 1990년대 들어 평사리의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소설의 무대를 재현했다.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살던 거주 공간을 재현해 꾸며놓았는데 섬진강과 악양 들판, 전통 촌락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며 하동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김해 동상동의 사충단은 의미가 깊은 장소다. 홍의장군 곽재우보다 앞서 의병을 일으킨 김득기, 류식, 송빈, 이대형이 배향돼 있다.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개전 이틀 만에 부산진에 이어 동래성을 함락하고 김해로 진격해 왔다. 1만 3000여 명에 달하는 왜군은 김해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공격했다. 왜군은 의병장 이대형, 김득기, 류식에게 투항을 권고했지만, 이들은 끝까지 싸워 모두 객사 앞에서 순절했다. 홀로 김해성 남문을 지키던 송빈은 큰 바위 위에서 마지막까지 왜군과 싸우다 순절했다.

하지만 역사는 주류를 기억하고 기념한다. 최초의 의병장은 곽재우로 기억되고 있으며 김해 출신으로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이었던 이들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러하고 주류에 속하지 않아서 그러했다. 저자들은 "역사는 주류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이들의 삶과 희생으로 유지되는 법"이라고 했다. 이처럼 경남 곳곳에 담긴 옛사람들의 숨결과 자취를 접하다 보면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아지는 듯하다.

부산일보=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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