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김해시의회 제222회 임시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9월 20일, '김해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 제정조례안'이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를 극적으로 통과했다. 조례 하나 통과에 뭐 그리 과장된 표현이냐 하겠지만, 그만큼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말이다.

상위법인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관련 정책 수립 및 시행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이 조례는, '개인이나 집단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 및 새로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다양성' 이념 자체가 인권에 기반을 둔 전 세계적 흐름이요 시대적 요청이기에, 명품 문화도시를 꿈꾸는 ‘김해시’, 관련 인식개선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는 ‘김해문화재단’, 그리고 일 년 가까이 조례 제정을 위한 공개 모임을 자발적으로 이어온 ‘김해시민’의 노력에 몇몇 ‘김해시의원’의 적극적 역할까지 더해지면서, 마침내 박은희 의원을 필두로 시의원 23명 전원이 서명한 조례안 공동 발의라는 보기 드문 성과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조례안 입법예고 며칠 만에 '김해동성애대책연합' 명의로 대부분 외지인이 서명한 6천 건이 넘는 반대의견서가 무더기로 접수되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이들의 거센 압력에 굴복한 야당 시의원 8명이 한꺼번에 동의 철회 후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조례안은 19일 상임위 심의를 힘겹게 통과했으며, 안팎의 압력에 여당 시의원들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20일 당일 아침까지도 본회의 상정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형국이었다. 그 급박하게 돌아간 사정을 일일이 언급할 순 없지만, 여하튼 김해시는 자진철회로 치욕을 남긴 부천시와 다른 길을 갔다! 특정 종교단체 중심의 전략적이고 주도면밀한 전국적·전방위적 반대운동이 회의장 안까지 점거해 소란과 방해를 일삼았지만, 시민들은 수적 열세에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힘을 모았고 결국은 '문화다양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낸 것이다. 부당한 압력이 우리 김해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면서.

반대자들은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고 협박성 문자폭탄을 의원들에게 보내며 악착같이 조례 폐지를 획책하고 있는데, 이 조례가 '동성애와 이슬람을 옹호해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이 주요 논지다. 왜곡, 논리적 비약, 일반화의 오류, 자기 본위적 사고도 허술한데다, 차별, 배척, 혐오의 부추김과 합리화가 그들이 믿는 종교의 본질에 자가당착적이다. 과연 그들은 생각해 봤을까? 지금도 이 '문화다양성 감수성'이 부족한 어느 사회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죄 없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생각이 충돌하는 사회에서 기독교신앙이 허용되는 것 자체가 '문화다양성 감수성' 덕분이라는 것을. 자기들 종교적 신념을 누구나 따라야 하는 지상명령처럼 강요할 때 그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이슬람극단주의와 다를 바 없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정치인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야당이든 여당이든 보수든 진보든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소위 '정체성'이라고 하는 지켜야할 철학과 원칙이 있다. 이걸 뺀 채 표밭만 보고 당론, 당리당략에 편승해 휘둘리기 시작하면 이는 직무유기다. 거대 양당 모두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당의 강령이나 규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는 것, 심지어 역행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편이나 조직이 아닌 그 조직의 철학에 따라 움직이는 소신 있는 정치가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까닭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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