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남의 떡'은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발전, 진보 혹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인간의 속성 상 남의 떡에 대한 미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욕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의 떡'을 쫓느라 정작 '우리 떡'이 가진 가치와 가능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울러 너무 익숙한 탓에 우리 것의 진가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에 김해뉴스의 '맛을 찾아서'는 김해의 식문화를 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외식업체 관계자, 유명 요리사, 음식 평론가, 맛집 블로거 등 국내외 유명 식객(食客)들의 입맛과 관점을 통해 '김해의 맛'이 가진 가치와 가능성 그리고 개선점을 진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번째 순서로 노보텔앰배서더 부산의 송연순 총지배인을 모셨습니다.

'식객, 김해의 맛을 탐하다'의 첫번째 손님으로 송연순(51) 총지배인을 모신 것은 일종의 필연이었다. 그녀는 이미 이 지면의 열렬한 독자였다. 기자를 만나자 대뜸 작년 송년호에 실렸던 '김해의 맛 지도'를 다시 구할 수 없느냐부터 물었다. 사연인즉슨 집무실 책상에 '김해의 맛 지도'를 펼쳐 놓고 다녀 온 곳을 체크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어느날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구의 소행인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고, 신문 한 장 때문에 소란을 피울 수도 없어 아쉬워만 하고 있던 참이라고 했다. 김해뉴스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다녀 온 곳을 표시하는 재미가 없어서 싫다고 한다. '철의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소녀같은 감수성이 새삼스러웠다. 송 총지배인과의 '김해 맛기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맛있는 음식 앞에서 그녀는 소녀 같은 감수성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 평가는 냉정하고 송곳 같다.

부산서 김해로 향하는 여정은 경전철을 이용했다. 낙동강과 김해평야를 가로질러 가야의 옛 도읍으로 향하는 부산~김해 간 경전철은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자원이었다. 맛의 고장인 전라북도 전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이후 지금까지 서울서 살아 온 송 총지배인에게 김해는 낯선 도시임에 분명했다. 특히 20대 중반에 잠시 부산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경상도 음식의 부정적인 인상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편견으로 남았다. 부산으로의 부임이 결정되자 가장 걱정했던 부분 역시 음식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경상도 음식의 숨은 매력을 발견했다. 틈틈이 음식점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의 추천을 받아 부지런히 다녔다. 덕분에 이제는 수십 년 이상 된 토박이 직원들조차 놀랄 정도로 세세한 정보를 꿰고 있다. 회사 회식 때마다 총지배인이 추천하는 음식점을 찾은 직원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이런 음식점까지 아시냐?"는 반응을 보인다. 맹렬한 식탐(?)은 결국 부산을 넘어 김해로까지 확장됐다. 김해평야밖에 몰랐던 그녀에게 이제 김해는 음식으로 새롭게 기억된다. '인구 50만에 불과한 소도시에 무슨 특별한 음식이 있을까' 싶었던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것에 행복한 비명을 지를 정도다.
 
▲ 향옥정.

그간 김해에서 드셨던 음식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을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생림면의 '지네먹인닭(김해뉴스 45호)'을 먹을 때였어요.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혈액순환이 활발해진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었죠. 그러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30분 정도 졸았는데,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는 세상에… 내 피부에 내가 감동했지 뭐예요(웃음)." 부산서 김해까지 제법 먼 길을 이 생경한 음식을 먹기 위해 달려왔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자가 놀랐다. 그러면서 "사장님 말씀이 세 마리는 먹어야 진정한 효과를 본다고 했으니, 겨울이 가기 전에 꼭 세 마리를 채울 작정입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반드시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는 믿도 끝도 없는 확신이 들었다.
 
특급 호텔 총지배인이라는 화려함과는 달리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추어탕이다. 자신의 체질에 맞아 몸이 가장 잘 받아 들이고, 때문에 피로가 쌓이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추어탕만한 음식이 없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위해 첫 번째 코스는 외동의 영도해장국(김해뉴스 54호)으로 향했다. 미꾸라지가 아닌 고등어로 끓인 추어탕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다. 묵묵히 추어탕 한 그릇을 깔끔하게 비우고는 "고등어로 끓인 국이라 비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비리기는커녕 그 어떤 재료보다 깔끔하네요. 제게는 생소한 방아잎도 이 국에서는 아주 잘 어울립니다. 전형적인 경상도 음식이면서도 의외로 부드운 게 인상적이에요. 모든 식기가 도자기로 구성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차림이 고작 6천 원이라니 가격이 너무 착해요."
 
▲ 영도해장국.

다음으로 봉하마을을 방문해 봉화산 '대통령의길'을 두어 시간 걸은 다음 한림면의 '화포메기국(김해뉴스 10호)'을 들렀다. 1년 전 취재를 왔을 때와 비교해 눈에 띄게 손님이 늘었다. 잡내 없이 개운한 맛은 여전한데 전에 느꼈던 진한 여운이 부족하다. 수요가 갑작스레 늘어난 식당들이 흔히 겪는 현상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선입견을 줄까봐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말 없이 국그릇을 비운 송 총지배인의 평가가 궁금했다.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긴 한데, 뭔가 임팩트가 부족해요. 일부러 찾아올 만큼 강한 인상은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 할 때는 다른 음식보다 고인께서 평소 좋아 했던 음식을 맛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심 없이 냉정한 평가에 달리 토를 달 재간이 없다.
 
일본 유학시절 송 총지배인은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다녔을 정도로 장어구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위해 불암마을에서도 그 유명세가 탁월한 '향옥정(김해뉴스 18호)'을 찾았다. 비록 양념은 다르지만, 숙련된 솜씨로 연탄불에 직화로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육질에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경상도식 손맛이 깃든 20여 가지의 반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헌데 "이렇게 맛있는 장어구이를 왜 굳이 쌈을 싸고 마늘에 쌈장까지 얹어서 먹느냐"며 못내 아쉬워했다.
 
▲ 창의성, 섬세함, 색의 조화까지 두루 갖춘 수선재의 음식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외국인들까지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 사진/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하룻 동안의 짧은 김해 식도락기행의 마지막 코스는 장유면 율하마을의 '수선재(김해뉴스 17호)'로 정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향토성 강한 지역음식이라서기보다는, 일종의 국제적인 기준에서 한식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수선재는 한식에 대한 창의성이나 식기와 재료의 선택, 그리고 미적감각 등 여러 기준에서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음식점이다. 이에 대해 국내외 식문화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특급호텔 총지배인의 평가가 궁금했다. 때문에 메뉴 역시 수선재의 솜씨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최소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약선정식(1인당 5만 원)을 선택했다.
 
국화차를 시작으로 구절판, 순두부카프레제, 오이선, 표고버섯찜, 삼색전, 가래떡찜 등의 메뉴가 상에 오르자 송 총지배인을 비롯한 일행들에게선 이구동성으로 짧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하루 종일 이성을 잃지 않던 송 총지배인조차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미식가 특유의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 지네 먹인 닭.
송 총지배인은 "재료의 신선함, 컬러의 조화, 재료 낱낱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어느 것 하나 튀지 않는 맛의 조화 등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음식"이라 평가했다. 특히 "전통적인 것만 고집할 경우 외국인에게 일종의 거부감을 줄 수 있는데, 수선재 음식은 이미지 자체가 친숙하게 느껴져 쉽게 손이 갈 수 있고 맛을 보면 더욱 놀라워 원더풀을 외쳐댈 거라 확신하다"면서 외국인에게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음식점으로 꼽았다.
 
송 총지배인과 식도락 기행을 다니는 틈틈이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었다. 주말을 맞아 집에 함께 있던 부자가 점심으로 뭘 먹었네, 저녁은 뭘 먹을거네 하는 내용이었다. 정작 객지 생활을 하는 본인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는데, 집에 있는 남편과 아들은 스스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녀이기에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준 또한 각별했다. "먹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고, 언젠가 반드시 그들과 함께 다시 와야겠다고 느끼는 음식"이라 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가족 생각이 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다.
 
▲ 화포메기국.
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호텔리어지만, 이면에는 소녀의 감수성과 주부로서의 책임감을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를 평가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원천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부산으로 돌아 가는 길. 송 총지배인은 음식으로 인해 하루만에 김해에 대한 애정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좋은 음식은 그렇게 한 지역을 기억하게 하는 특별한 계기가 된다. 차가 해운대에 들어서자 숙소인 호텔이 아닌 동백섬에 내려 달라고 했다. 하루 종일 과하게 먹었으니 동백섬을 몇 바퀴 돌고 들어가야겠다는 것이다. 역시 남달랐다. 그런 철저한 자기관리가 한편으로 부러웠다. 나 역시 그러고 싶었지만 목전에 다가 온 기사 마감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뤘다. 나처럼 철저하지 못한 인간들의 자기관리는 늘 '다음'으로 미뤄지기 마련이다.


>> 송연순 총지배인은
늘 '여성 최초' … 앰배서더호텔그룹 첫 여성 임원

1986년 서울 하얏트리젠시 호텔에서 시작해 올해로 26년차 호텔리어이다. 그녀에게는 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지난 2006년 한국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적 호텔그룹 아코르(Accor) 본사에서 총지배인 양성 과정을 이수했고, 2009년에는 앰배서더호텔그룹 최초 여성 임원으로 승진해 노보텔앰배서더 독산의 부총지배인을 역임했다. 여성 파워가 막강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호텔업계에는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 즉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존재했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을 그녀는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전문성 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극복해 왔다.
 
결국 지난해 1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특1급 호텔인 부산 해운대 노보텔앰배서더 부산의 여성 총지배인으로 취임했다. 파격적인 인사라는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송 총지배인은 취임 1년 만인 지난해 연말 첫 흑자를 달성하는 저력을 보였다. 노보텔앰배서더 부산의 흑자는 1988년 하얏트 호텔로 영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는 외로움까지 견뎌야 하는 송 총지배인에게 있어 유일한 낙은 등산과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는 일이라고 한다. 업계에서 그녀는 '여성 최초' 못지 않게 미식가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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