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물에 토막낸 오리와 무, 소금을 넣고 40분 정도 끓인다. 토막을 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뼛속에 있는 맛 성분이 빨리 우러나게 하기 위함이다. 사진/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낙동강 오리알'. 낙동강의 지명도를 높이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이 관용구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홀로 소외되어 처량하게 된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너무나 익숙한 말이긴 한데 그 유래를 찾아 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한국전쟁설이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하하려는 인민군과 이를 저지하는 유엔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유엔군 항공기에서 퍼부은 수많은 네이팜탄과 그 공격으로 쓰러지는 인민군을 보며 한국군 중대장이 "아! 낙동강에 오리알 떨어진다"라고 소리쳤고, 이후로 '낙동강 오리알'은 한국군이 인민군을 조롱하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배경이나 등장인물이 구체적이어서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상대를 조롱하는' 의미와 '무리에서 뒤처진 처량한 신세'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생태적인 측면에서의 분석도 있다. 낙동강의 오리는 강변의 갈대밭에 알을 낳고 부화를 했다고 한다. 헌데 오리알 가운데 몇몇은 갈대잎 사이의 덤불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떨어진 오리알은 물에 가라앉아 썩어 버리거나, 수면 위를 떠다니다 다른 짐승의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불행한 운명을 맞았다. 이처럼 서식환경에서 이탈해 오리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을 두고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분석이다.
 
명확하지 않은 유래를 두고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데 어떤 설을 택하든 낙동강에 오리알이 그만큼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낙동강 하구 을숙도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철새 도래지다. 상류에서 내려 온 퇴적물이 한데 모여 먹이가 풍부하다보니 오리, 도요새, 물떼새, 가마우지, 백로 등이 많이 몰렸는데 터줏대감은 뭐니뭐니해도 오리류다. 낙동강하구를 찾아오는 오리류에는 청둥오리, 가창오리, 흰죽지, 흰뺨오리 등이 있다.
 
물론 지금의 낙동강 하구에는 예전만큼 오리도 오리알도 흔치 않다. 대신에 오리전문점이 즐비하다. 김해시 대동면과 부산시 강서구 일대에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오리전문점이 많고, 굳이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어느 식당에서건 오리 요리 한두 가지 쯤은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낙동강 주변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오리가 낙동강과 관련이 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사육되고 소비되는 오리는 대부분 페킨이라는 품종이다. 오리하면 연상되는, 흰색 털에 밝은 오렌지색의 주둥이와 다리를 가진 페킨은 중국이 원산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비록 오리알도 찾아보기 힘들고 오리 또한 외래 품종이지만, 오랜 세월 오리를 다뤄 온 솜씨와 낙동강이라는 든든한 배경 덕분에 오늘도 낙동강 하구의 오리전문점은 변함 없이 성업 중이다.
 
김해시 대동면에 있는 '버드나무집'은 인근의 수많은 오리전문점 가운데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메뉴라 해봐야 오리탕과 오리불고기 단 두 가지. 그 중에서도 오리탕이 특히 유명하다. 승용차가 아니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앉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평일이건 주말이건 문전성시를 이룬다. 식당 성공의 핵심 요인이 입지라는 것은 점점 옛말이 되어간다. 소문난 집이라면 어떤 수고를 마다않고서라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 요즘 소비자들의 욕망이다.
 
▲ 직접 재배한 배추로 김치를 담가 1년 동안저온저장고에서 숙성시킨 버드나무집의 별미.
사람마다 맛있어 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기자에게 '버드나무집'의 오리탕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함 때문이다. 그 단순함의 본질을 들여다 보기 전에 우선 한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닭에 비해 오리가 비타민 B군이 더 많고 콜레스테롤이 적으며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영양 면에서 우수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오리는 일상식이라기보다는 보양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이 '보양식'이라는 인식이 식재료로서 오리가 가진 가능성이자 동시에 한계로 작용한다.
 
오리요리에는 유난히 '한방·약선·유황·황토' 등의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이는 보양식으로서의 효능을 강화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오리가 가진 특유의 향을 잡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오리에는 누린내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가벼우면서도 고기 맛 전체를 감싸는 특유의 향이 있는데 이를 흔히 '야생의 향'이라 한다. 소, 돼지, 닭 등 인간이 오래 전부터 개량하고 사육해 온 대부분의 가축에서는 이 '야생의 향'을 찾아 볼 수 없는데 유독 오리는 이것을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한동안 오리가 외면받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약재를 곁들여 찌거나 훈제를 하거나 양념을 강하게 하는 조리법이 발달해 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오리 소비량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지만 정작 오리 고유의 맛을 아는 소비자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고기 자체의 맛을 즐기기보다는 한약재나 강한 양념 혹은 훈제향에 익숙하다 보니, 맛은 거기서 거기가 되고 조리법 역시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버드나무집의 오리탕은 오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스텡그릇'에 한가득 담긴 오리탕을 보고 있노라면 말간 국물에 오리고기, 무, 대파, 청양고추 정도가 눈에 보이는 것의 전부다. 그런데도 국물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고 육질은 쫄깃하면서 입에 감긴다. 닭과는 분명 다른, 오리 특유의 '야생의 향'이 남아있긴 한데 전혀 거북스럽지가 않다. 성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손님이 특히 많은데 남녀노소 누구나 오리고기를 열심히 '뜯고' 있다.
 
▲ 주방에 진열된 오리탕 냄비가 오랜 전통을 대변하고 있다.

비결이 뭘까? 맥빠질 정도로 간단하다. 오리 자체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버드나무집은 당일 아침에 잡은 오리를 사용한다는 원칙을 2대째 35년간 유지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식당에서 직접 오리를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 자체가 불법이다. 오리는 시·도의 허가를 받아 검역원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 도계장에서만 도축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울산시 울주군에서는 무허가 시설에서 불법 도축한 오리 2만6천여 마리를 유통시킨 도매업자와 이를 공급받은 유명 오리전문점 대표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오리전문점 대표는 "오리탕의 생명은 고기의 신선도인데 울산엔 도계장이 없어 불법도축한 고기라도 신선한 고기가 필요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버드나무집에서는 대저에 있는 직영 농장에서 키운 오리를 매일 새벽 구포에 있는 도계장으로 실어 간다. 도축된 오리는 다시 낙동강을 건너 버드나무집으로 온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껍질을 벗겨 몸통과 내장을 분리하고, 몸통은 일일이 칼로 토막을 낸다. 부모님에 이어 2대째 버드나무집을 운영하고 있는 홍점봉(52) 대표는 매일같이 이 작업을 반복한다.
 
맹물에 토막낸 오리와 무, 소금을 넣고 40분 정도 끓인다. 토막을 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뼛속에 있는 맛 성분이 빨리 우러나게 하기 위함이다. 홍 대표의 아내 김숙자(49) 씨의 표현을 빌면 "오리를 쪼사서 끼리야 국물맛이 개운하다"고 한다. 여기에 고춧가루 양념과 파, 청양고추 등을 넣고 한 소끔 정도 끓이는 것이 전부다. 더 끓이면 고기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겠지만 국물이 텁텁해지기 때문에 "고기가 살짝 질기다 싶을 때"가 적당하다는 것이다. "국물 때문에 고기맛을 포기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고기맛이 일품이다. 버드나무집의 오리탕은 개운한 국맛도 국맛이거니와 오리고기를 손으로 들고 뜯는 재미가 쏠쏠하다.
 
▲ 2대째 35년간 운영해오고 있는 대동면 오리탕 전문점 버드나무집.

게다가 버드나무집의 오리탕이 이 계절에 특히 더 맛있는 것은 오리만큼 많이 사용된 무 때문이다. 봄무, 여름무, 겨울무 중에서 겨울부터 이른 봄에 출하되는 것이 달고 싱싱해 가장 맛있다. 그래서 경상도 어르신들 가운데는 "겨울무시는 보약이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 오리와 맛 성분을 주거니 받거니 한 무는 달고 부드러우며 감칠맛이 뛰어나다.
 
제법 큰 건더기를 건져 먹은 다음에는 마무리로 남은 국물에 밥 한 술을 말아야 한다. 쇠고기 국밥과 비슷해 익숙한 맛인데다 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담아 저온저장고에 1년 동안 숙성시킨 김치가 숟가락질을 더욱 분주하게 한다.
 
별다른 비법 없이 오로지 35년간 신선한 재료를 위한 부지런함 하나만으로 소문난 집이다. 좋은 음식은 정직한 재료로부터 시작되니, 어쩌면 그 부지런함이 가장 핵심적인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오리탕 한 냄비면 성인 3명 정도가 보양식이라기보다는 그저 맛있는 오리 요리를 충분하게 즐길 수 있는 양이다. 조리시간이 걸리는 관계로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메뉴:오리탕(2만7천원), 오리불고기(3만원)
▶위치: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안막3구 952-477
▶연락처:055-335-6719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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