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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가져온 '금수능라' 가야서 통용"가야 문화 복원 프로젝트 - ⑤ 고대 직물과 가야
  • 수정 2019.11.26 15:50
  • 게재 2019.11.26 15:42
  • 호수 448
  • 8면
  •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연미(report@gimhaenews.co.kr)
▲ 고령 지산동 고분군 출토 금동관과 직물 수착(銹着) 모습.


남아있는 고대 직물 태부족
대부분 고유 성질 잃고 금속화
삼국지 "가야인 누에 칠 줄 알아"
가야 고분서 마·견·모 출토도



직물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고 그 사용방법과 목적도 매우 다양해 인간의 생활 문화와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직물 연구는 매우 생소한 분야이며 심지어 고대의 직물은 고대 문화를 연구하는 부문 중에서도 상당히 어려운 분야이다. 직물이 그 재질의 특성상 현재까지 남아 전해지는 직물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경우도 대부분이 다른 금속유물에 수착(銹着)되어 발견돼 직물 자체의 성질은 없어진 상태이며 그나마도 완전한 형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듯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했던 직물들은 문화재나 자료로 인식되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쓸려나가는 일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구의 관점과 방법 등이 바뀌고 문화재를 연구하는 과학적 방법들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우리들이 놓쳤던 작은 단서에서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내고 있다.

고대 직물 역시 그런 대상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이 수많은 노력을 토대로 조금씩 고대 직물의 모습과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확인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 청도 옥산리 고분군 출토 토기 바닥과 제작 당시 사용된 직물 흔적.

 
■가야시대 직물 대부분 수착직물 형태

그렇다면 가야시대의 직물은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볼 수 없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고대직물이 그렇듯이 가야시대의 직물 역시 수착직물의 형태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착직물(銹着織物)이란 금속에 붙어서 직물의 성질은 없어지고 금속화되어있는 직물을 말한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출토 금동관, 합천 옥전 고분군 출토 투구, 함안 도항리 고분군 출토 화살통 장식 등에서 사용되었던 직물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예들은 복식이나 착용할 때 도움을 주는 역할, 장식을 달기 위한 역할 혹은 물건을 잘 보관하기 위해 포장하는 역할 등 직물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청도 옥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에는 토기를 제작할 당시 사용되었던 직물의 흔적이 토기의 바닥면에서 확인된다.

이렇듯 직물은 가야시대에도 인간의 생활 곳곳에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며 밀착돼 있다. 문화재의 원로이신 유홍준 선생님은 그의 저서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다. 고대의 직물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유물에 남아있을지를 알고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직물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알려고 노력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삼국유사 권2 기이편.


■고문헌 "금수능라 통용·직물 종류 다양" 기록

고대의 직물을 연구하기도 어려운데 그 중에서도 '가야'로 지역과 시대를 한정시키면 연구 조사를 하기에는 한층 더 어려워진다. 연구의 대상 자체가 적기 때문에 또 다른 연구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고문헌에 나타나는 직물관련 기록들을 살펴 남아있는 직물들과 연관시키거나 추측해 낸다. <삼국유사>기이 가락국기편을 살펴보면 …所賚錦繡綾羅衣裳疋段金銀珠玉瓊玖服玩器不可勝記…(그들이 가져온 금수능라(錦 繡綾羅)와 의상필단(衣裳疋段), 금은주옥(金銀珠玉)과 구슬로 된 장신구는 이루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가지고 온 물건 목록에 '금수능라'라는 직물이 들어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가야에서의 직접 생산 여부를 따질 수는 없으나 가야에서 통용되었던 직물이란 것은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 <후한서> 등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면 가야인은 누에를 칠 줄 알았다. 또한 '겸포', '광폭세포(廣幅細布)', '변한포(弁韓布)', '면포', '계' 등의 직물들을 짜고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각각 직물의 제작방식이나 재료 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기록에 등장하는 직물들이 정확하게 어떤 직물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직물들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대량의 생산이 가능한 직물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가야의 고분에서 출토 된 직물들을 살펴보면 마(麻), 견(絹), 모(毛)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가야인이 사용하고 있었던 직물의 종류가 다양했었음을 짐작케 한다.

최근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문화재를 연구하는 방법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니 그동안 인문학적으로만 접근하던 문화재의 연구자들이 이공학적인 방법을 접목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인문학적인 방법만으로는 풀지 못했던 문제의 참고서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서이지 해답서는 아니다. 더 많은 조사 연구를 통해 가야인의 생활에 녹아있었던 직물을 찾아내고 더 나아가 가야인이 사용하고 만들었던 직물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끝>  김해뉴스

 

 

 

김 연 미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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