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지지 않는 책은 정보전달 매개체로서의 가치가 없다. 울지 않는 새를 두고 견해를 달리했던 일본 전국시대의 고사를 보듯이 재미없는 책은 불태우든지 아니면 재미있는 책만 읽든지, 그도 아니면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
 
'영웅문'은 적어도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책이었다. 3부작 18권으로 끝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보는 나로서는, 새로운 지식을 소개하는 전문서적이 아닐 바에야 속되지만 재미있게 읽어지는 책이라야 가치가 있다는 편집적 독서 취향을 심어준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중국 출신으로 홍콩에서 생활했던 김용(金庸)의 '영웅문'은 1980년대 중반에 고려원에서 판권 계약없이 무단 출간되었다. 당시 국내의 암울했던 정치사회 상황과 맞물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백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영웅(英雄).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웅문' 1부작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곽정은 영웅이 될 수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곽정은 재질이나 재능이 자기 부인인 황용에 못미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보통사람보다도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그는 남자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무엇이든 크게 성취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성품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작품 중 굳이 1부에 해당하는 '사조영웅전'만을 소개하는 이유는 곽정이라는 주인공이 있어서이다. 작가 김용의 모든 작품이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중국어 교재로 사용되고, 최근에는 베이징시내 고등학교 교재로 채택되는 등 문학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지만 필자 개인의 생각에 영웅에 가장 걸맞은 주인공이 1부에 나오는 곽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부나 3부는 무술 실력과 외모가 더 뛰어난 주인공이 등장하고 소설적인 재미도 더하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부인인 황용과 더불어 몽고족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곽정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니겠는가.
 
또한 '영웅문'에는 못생긴 남자의 영원한 로망인 미인과의 러브스토리가 있다. 뛰어난 외모와 집안, 재능까지 갖춘 '엄친딸' 황용이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한참 모자란 곽정을 선택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에서, 이 시대의 루저인 필자도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일진회와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 요즘의 청소년들 가운데는 남보다 주먹이 센 사람이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곽정이 등장하는 중국 송나라 말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센 놈이 모든 것을 가지는 전란과 혼란의 시기에 곽정이 그 뛰어난 무술 실력을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했는지 이 책은 흥미진진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영웅이란 남들보다 무술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약자를 배려할 줄 알고 용기와 신념으로 무장한 실천가라는 점을 우리 사회의 일진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대성동고분군박물관 운영 담당 송원영은
1971년 김해 생림 출신으로 김해합성초등학교와 김해중·김해고·부산대 대학원을 졸업한 김해토박이다. 가야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고고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 뛰어놀던 대성동 고분 언덕 아래에 있는 대성동고분박물관 운영 담당으로, 김해의 역사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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