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급, 노커업, 예술작품 등
사회적 논쟁과 사건을 일으키며
역사의 변곡점 됐던 공장들 이야기



1721년 영국 더비의 더웬트강에 있는 섬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구색을 갖춘 공장이 세워졌다. 공장은 산업혁명의 선두에서 인간의 생활방식과 지구환경을 변화시켰다. 공장이 생기기 전만 해도 절대 다수의 인간은 굶주림과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세기 중반 영국인의 기대수명은 40세가 채 안 되었다. 18세기 공장의 출현 이후 재화와 서비스가 축적되면서 세상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대수명이 급격히 늘어났고 일부 부유층에게만 허락되었던 넉넉한 음식과 깨끗한 물과 위생은 세계 곳곳에서 누릴 수 있을 만큼 일반화됐다.
 
공장은 이처럼 인간의 생활을 향상해왔지만, 한편으론 계급갈등과 환경오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주범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등장하면 기존에 투자한 대규모 자본은 경쟁력을 잃고 버려졌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모됐다. 산업 자이언티즘(Industrial giantism)의 생명력은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 새로운 노동력, 새로운 기술을 착취해야 하는 후진성에 있었다.
 
18세기 영국에서 나타난 산업 자이언티즘은 19세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섬유와 철강 산업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가 20세기 초 자동차산업을 휩쓸었다. 1930년대에는 옛 소련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들을 흔들어놓은 뒤 오늘날 아시아의 비히모스(Behemoths, 바다를 지배하는 괴물 '리바이어던'과 함께 육지의 짐승을 거느리는 성서 속의 괴물로 보통은 거대 기업을 일컫는다)에서 절정의 위세를 떨치고 있다.
 
미국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더 팩토리>에서 사회적 논쟁과 사건을 일으키며 역사의 변곡점이자 랜드마크가 됐던 공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킨 공장에서 이어진 자본가와 노동자의 오랜 줄다리기 역사, 공장의 방대한 크기와 신비로움에 매료돼 찬사와 비판을 쏟아낸 예술가들의 이야기, 산업발전을 위해 미국 공장 시스템을 차용했던 옛 소련 이야기 등이 흥미롭다.
 
공장은 경제적인 측면 외에도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8세기 공장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의 생활에 '시간'이란 개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공장은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여야 했고,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시간의 개념을 억지로 주입하려고 종을 울렸다.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장대로 창문을 두드려 알람 역할을 해주는 '노커업(knocker up)'이란 직업도 생겨났다.
 
대중의 생활에 깊게 파고든 공장은 자연히 예술가들의 시선에 포착됐다. 영국에서 시작된 거대 공장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던 때만 해도, 공장의 이미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때 사람들은 공장을 산업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재나 진귀한 구경거리로 받아들였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사우디는 스코틀랜드 뉴래너크 공장을 '로마의 유적'에 비유했다. 자동차 산업의 전설인 헨리 포드의 공장에는 1915년 당시 하루에 400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포토 저널리즘을 개척한 여성 사진작가 마거릿 버크화이트는 "나는 공장을 숭배한다"는 말로 시대를 규정하고 공장과 관련된 유명 사진 작품들을 남겼다. 평소 마르크스주의자나 공산주의자를 자처한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조차 미국 디트로이트의 헨리 포드가 세운 산업제국에 매료됐다. 그는 1933년 20세기 미술의 대작으로 공장 시스템을 시각적으로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프레스코 연작 '디트로이트 산업'을 남겼다. 작품을 공개한 첫 주에만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벽화는 곧 디트로이트의 으뜸가는 명물로 자리잡았다.
 
반면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스'를 통해 공장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산업화를 비판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에서 2010년대 노동자들이 자살한 사건은 첨단 기기를 만들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인간성의 희생’이란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미래의 공장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미래를 생산할까. 과연 공장은 문명을 진보시킨 프로메테우스인가, 아니면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킨 괴물인가? 책을 덮고난 뒤 드는 생각이다.
 
부산일보=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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