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요즘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복고(retro)를 넘어 지나간 것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재해석해 새롭게 향유하는 신복고(newtro)가 유행이라고 한다. 중장년층에게는 향수와 친밀감을 젊은층에게는 옛 감성에 대한 낯선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해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 형성의 장점이 있는데다, 공유와 확산 속도가 워낙 빠른 시대다 보니 그 반향 또한 작지 않은 모양이다. 패션, 인테리어, 소품, 가게, 먹거리, 취미 등에 이어 최근엔 사람까지 다시 불러내고 있는데, 90년대 교포가수 양준일씨에 대한 관심은 열풍을 지나 가히 신드롬 수준이다.

1991년과 2001년 두 차례 활동을 통해 리듬앤블루스와 힙합이 결합된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나 댄스곡을 자신만의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스타일로 들려줘 일부 마니아층을 형성했지만, 당시 한국 정서와는 많이 달랐던 탓에 대중적인 주목이나 인기를 끌진 못하고 잊혀져간 그였다. 그러나 지금 봐도 몸으로 리듬을 가지고 노는 듯 세련되고 멋진 그의 옛 영상들을 유튜브를 통해 접한 젊은이들에 의해 '탑골GD, 시간여행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 뮤지션' 등으로 재조명되며 엄청난 조회수와 함께 회자되기 시작하자, 급기야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연일 화제의 인물로 다뤄 사람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그 덕분에 나 같은 대중문화 문외한도 그 이름 석 자를 알았으나, 여기까진 그저 시대 변화에 따른 한 가수의 재발견 정도로 가볍게 여겼을 뿐이다. 70년대 초 대대적인 사랑을 받다 홀연히 사라진 어느 가수의 발자취를 쫓는 다큐영화 '슈가맨을 찾아서'에서 모티브를 따와 한 두곡의 히트곡만 남긴 채 사라진 가수를 찾아 추억을 되살리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그의 고백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이제 50을 넘긴 그가 20대 초반 고국에서 겪은 아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게 싫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이 도장은 절대 안 찍어줘. 너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어"라며 부당하게 비자 연장을 거절했던 출입국관리소 직원. 무대를 향해 모래, 신발, 돌을 던지던 관객들. 양아치와 장아찌를 구분 못하고 어디가 선정적인지 몰랐던 교포가수에게 영어남용 및 선정성을 이유로 내려진 방송출연정지와, 그럼 왜 방송국 이름은 영어인지 물었던 그의 통쾌한 일갈. 아무도 곡을 써주지 않아 서툴러도 혼자 곡을 써야 했던 사연. 팝도 가요도 아니라며 내쳐져 설 곳 없이 투명인간 취급받았고 재능이 제대로 평가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한 젊은이의 좌절과 상처, 당시 우리 사회의 폐쇄적 자화상이 그대도 드러나는 가운데,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겸손한 아빠와 남편으로 살고 싶다는 중년의 소박함 속에 30년 전 순수한 청년이 언뜻 또 겹쳐져 미안함과 착잡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달라졌을까? 우리가 날개를 꺾고 있는 또 다른 양준일은 주위에 더 이상 없는 걸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음에도 익숙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해서 지극히 건강한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있지는 않는가? 감정적 호불호와 이성적 공정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내가 싫다고 해서 누군가를 불공정하게 대우하고 있진 않는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풍요로운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눈엣가시 취급하거나 편견, 차별, 배척, 혐오의 시선으로 대하진 않는가? 시대를 앞서갔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시대의 상식에 맞지 않았다 등의 말도 엄밀하게는 피해자에게 문제를 전가하는 책임 회피의 변명일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에 있어 우리 사회의 성찰과 배려가 부족하고 열려있지 못해서였는데 말이다. 양준일 신드롬 앞에서, 재발견에 대한 열광 이전에 과거 그가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똑같은 그늘이 아직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았으면 한다. 아무리 봇물 터지듯 나오는 응원이라도, 때늦은 응원보다는 때맞춘 응원이 사람을 더 반짝이게 만드는 법이다. 넘치는 재능을 맘껏 꽃피워야 했던 청춘 양준일은 이미 가고 없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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