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산 이홍식 시인·수필가

요즘은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는 시대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형상은 그 특징이 강해지거나 약해지거나 하면서 끊임없이 변하지만, 새것을 도입하기 위해 옛것을 내팽개치거나 옛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새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새것은 늘 새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옛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것은 옛것 속에 들어있으면서 옛것의 한계를 해결하고서야 등장하는 것이다.

통신의 진화에 견주어 생각해보자. 유선전화기 1대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전화기가 설치되어있는 장소에서만 통화를 할 수 있었으니 누구네 집 아들한테서 전화 왔다며 빨리 와서 받으라는 마을 이장님의 앰프방송이 온 동네에 진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사람들은 전화기에서 조금 떨어져서 통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무선전화기가 나왔고 다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통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따라 휴대전화가 나왔다. 사실상 유선전화기 안에는 다음에 나타날 무선전화기의 모습이 들어있고 또 무선전화기 안에 휴대전화의 모습이 들어있다. 휴대전화(새것)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유·무선 전화기(옛것)가 나아갈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이 옛것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새것이 필요하므로 새것은 이미 옛것 속에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즉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얼굴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일신(日新)의 진화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새것과 창조, 변화나 혁신 같은 얘기들을 앞다투어 큰소리로 부르짖는다. 그리고는 옛것이 마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괴물이나 암세포인 양 혐오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아니, 오산을 넘어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변화와 혁신은 진정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상대를 없애기 위한 얄팍한 수단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동시에 바꿔야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변화의 실타래를 풀어갈 것인가? 첫째, 바꾸는 척하며 변화의 목소리가 줄어들 때까지 숨죽여 지낸다. 둘째, 자신을 내버리고 앞서가는 곳을 훔쳐보며 따라간다. 셋째, 자신을 돌아보고서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이처럼 각각의 대처방식에 따라 변화가 시늉으로 그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개선을 낳을 수도 있다. 언젠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어느 대기업 총수의 말이 언론지상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그 말은 한 기업이 적극적인 혁신을 통하여 모방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자는 뜻이었겠지만 우리 시대의 변화를 지도하는 말로써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지난해 나라 경제의 어려움과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지켜보았던 잔상 때문인지 찬바람 이는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안고 가야 하며 그 변화의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2020년부터는 인구감소와 공급과잉으로 인하여 본격적인 수축사회로 접어들 것이라 한다. 정치와 경제는 우리의 생각과 생활환경을 바꾸는데 더욱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이는 정치와 경제를 절망적이고 비관적으로 단정하지만, 오히려 여러 기회가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뜻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정치 지형의 변화가 예상되는 4·15총선은 총체적이고 단절적인 변화까지는 아니어도 틈새적이고 공생적인 개혁의 기회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좋은 곳을 골라 따라가는 택선종지(擇善從之)의 지혜도 함께 생각해본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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