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손짜장의 수타면으로 만든 짜장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짜장면에게 면목이 없다. <김해뉴스>가 창간된 지 1년3개월. 그간 60여 회에 걸쳐 '김해의 맛'을 찾아 다녔건만, 여지껏 짜장면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그 위상에 비춰 볼 때 결례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짜장면의 유래나 어원 등을 따지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자. 그건 이미 너무 많이 다뤄져 왔다. 그보다는 짜장면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음식인지를 따져 보기로 하자.

통계에 따르는 한국인 8명 가운데 1명이 매일 짜장면을 먹는다고 한다. 따라서 전국 2만4천 개의 중국 식당에서 하루 600만 그릇의 짜장면이 소비된다. 한국인 치고 짜장면과 관련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를 대변하듯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태극기, 김치, 고추장 등과 함께 짜장면을 '한국의 100대 민족문화 상징'으로 선정했다. 물가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던 MB정부는 취임 초기,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있는 52개 생필품과 공공서비스를 '물가 중점관리 품목'으로 지정했다. 이때 짜장면은 식당 음식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이상이 짜장면의 위상을 대변하는 객관적인 지표라면, 표기법과 관련한 논쟁은 짜장면이 한국인의 정서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대변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짜장면'은 짜장면으로 불리고 쓰였다. 헌데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생기면서 국립국어원이 '자장면'을 표준어로 삼았다. 이는 곧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했다. "우리는 자장면을 원치 않는다. 국민의 명칭 짜장면을 다시 돌려달라!"며 인터넷 카페에 '짜장면 되찾기 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문인들까지 가세했다. 작가 안도현은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는 않을 작정"이라 했고, 연출가 김상수는 "웃기는 짜장면", 동화작가 이현은 "불어 터진 짜장면발 같은 소리"라고 비꼬았다. 일찌기 국립국어원의 결정에 대해 '자장면'만큼 국민적인 저항이 컸던 사례는 없다.
 
▲ 복국 전문점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버리고 짜장면에 빠져버린 윤영대 대표가 정통 수타면을 뽑고 있다. 사진=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결국 지난해 8월 31일 국립국어원은 기존의 자장면과 더불어 일상에서 흔히 써온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했다. 25년만에 사면복권된 짜장면에 대해 일제히 환호했다. 이날 짜장면과 더불어 39개의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됐건만, 국민들에겐 '자장면'이 '짜장면'이 된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중국집을 평가할 때 짜장면과 더불어 반드시 거론되는 음식이 짬뽕과 탕수육이다. 탕수육, 짬뽕, 짜장면 즉 '탕짬짜'는 중국집의 트로이카다. 귀한 재료로 만든 고급 중화요리가 아무리 맛있다 한들, 탕짬짜가 부실하면 속 빈 강정 취급을 받는다. 반대로 다른 요리가 부실하더라도 탕짬짜만 괜찮으면 '제대로'된 중국집 반열에 오른다. 짜장면은 짜장몐(炸醬麵), 짬뽕은 차오마몐(炒馬麵), 탕수육은 탕추러우(糖醋肉) 등 모두 중국 음식에서 비롯되었지만, 세 음식은 지난 수 십년 혹은 100년 세월 동안 맹렬하게 한국화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이제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한국음식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김해시 명법동과 삼계동에 각각 본점과 분점이 있는 '맛손짜장'은 어느 것이 제일이다 결론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짜장면, 짬뽕, 탕수육이 고루 괜찮은 집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1년 3개월 만에 다루는 짜장면집 치고는 제격이다 싶어 찾았는데, 취재 도중에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맛손짜장의 윤영대(43) 대표는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우선 그는 경주에서 유명한 복국 전문점의 둘째 아들이었다. 가업을 이을 요량으로 20대 초반부터 복요리를 배웠다. 하지만 재미가 없어 그만두고 수타면으로 전향했다. 화교출신도 아니고 중국요리 전문과정을 거치지도 않았지만 수타면의 매력에 빠져 오직 한 길을 걸었다. 그후 이력은 더 특이하다. 그는 금강산에 있는 해금강호텔의 중식 주방장으로 3년을 근무했고, 북한의 귀빈 숙소였던 '김정숙휴양소'를 리모델링한 외금각호텔의 중식당 '외금각'의 오픈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산가족상봉과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관계의 주요 현안마다 그의 음식이 등장했다. VIP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북한의 명물인 송이를 사용해 만든 '송이짬뽕'은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3년 간 그의 금강산 생활만 엮어도 이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에피소드가 다양하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윤 대표의 이력이 아닌 관계로 이 정도로 줄이기로 하자.
 
이후 그는 연고가 전혀 없는 김해에 정착해 '맛손짜장'을 열었다. 그것도 인적이 드문 국도변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서는 모두 정신 나간 선택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그는 음식만 괜찮으면 입지 따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아니 예상이 적중했다기 보다는 음식에 대한 그의 우직함과 열정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입소문이 퍼져 맛손짜장은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고, 개점 3년 만에 삼계동에 2호점을 내기에 이르렀다.
 
▲ 맛손짜장의 수타면으로 만든 짬뽕.

맛손짜장은 배달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급 중화요리전문점도 아니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서민적인 중식당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결과 위생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수타면을 고집하기 때문에 면을 뽑는 작업장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픈 주방을 통해 조리 과정 전부를 공개하고 있다.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주방의 대표격이었던 '중국집'에 대한 고정관념은 맛손짜장에서 만큼은 옛말이다.
 
우선 짜장면을 보자. 흔히들 수타면이 기계면보다 낫다고 단정짓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기계면은 강한 탄력을, 수타면은 부드러움과 탄력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나뉜다. 수타면이라도 반죽이 잘못되거나 삶는 과정이 엉터리면 기계면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수타면임을 애써 강조하듯 면의 굵기나 길이가 제각각인 경우에는 오히려 식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맛손짜장의 면은 '정통 수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표면은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한 탄력이 받쳐줘 씹는 재미가 탁월하다. 더불어 이러한 식감이 제법 오래 유지된다. 십 수년 동안 면의 특성을 끊임없이 연구해 온 윤 대표의 내공이 만만찮음을 짐작케 한다.
 
짜장면에 춘장을 사용한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안다. 춘장은 밀과 콩에 황국균을 넣고 띄운 중국식 된장이다. 예전에야 어지간한 중국집에서는 이 춘장을 직접 담가 썼다지만, 지금은 전부 공장에서 만든 춘장을 사용한다. 이 '공장춘장'에도 지역적인 차이가 있다. 전국적으로 사자표 춘장이 가장 유명하다. 서울·경기 지역 중국집의 90% 이상, 전국 70% 이상이 사자표를 쓴다. 헌데 유독 부산·경남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해표춘장을 선호했다. 사자표가 해표를 인수했지만 영남지역의 취향을 고려해 여전히 해표춘장을 생산하고 있다. 중식 요리사들에 따르면 사자표가 부드러운 데 반해 해표는 상대적으로 강한 맛을 낸다고 한다. 따라서 공장춘장이라도 어떤 브랜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중국집 마다 소스 맛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복수의 춘장 브랜드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맛손짜장 역시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수타면과 믹스한 공장춘장의 사용, 여기까지는 여느 중국집 짜장면과 큰 차이가 없다. 맛손짜장의 특징은 그 다음 공정에 있다. 짜장면은 그간 설탕과 화학조미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맛손짜장에서는 설탕과 화학조미료 대신 양파의 양을 늘리고 닭육수를 사용함으로써 단맛과 감칠맛을 낸다. 그래서 약간 허전한듯 하면서도 은근한 단맛과 감칠맛이 매력이다. 첫 맛부터 강한 중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 때는 편안하고 돌아서면 생각나는 그런 짜장면이다.
 
짬뽕 역시 짜장면 못지 않게 인기 메뉴다. 우선 채소와 해산물의 양이 넉넉하다. 넉넉할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신선하다. 재료가 넉넉하고 신선하니 국물맛이 선명하고, 각종 해산물과 닭육수가 어우러져 감칠맛이 풍부하면서도 칼칼하다.
 
▲ 간장으로 간을 해 깔끔한 탕수육.

짜장면이든 짬뽕이든 신선한 재료와 닭육수의 사용이 인상적이다. 의구심이 들어 닭육수는 직접 뽑아서 쓰느냐고 슬쩍 물었다. 윤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은 한끝에서 차이가 납니다. 닭육수가 중식의 기본인데 매일 뽑아 써야죠. 저희 집의 경우 주방장은 출근하자마자 육수와 장(짜장면 소스)을 뽑고, 나머지 직원들은 채소 다듬는 작업을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맛이 증명하니 그 주장에 굳이 토를 달 이유는 없다.
 
끝으로 탕수육은 나오는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일단 생김새만으로도 그 맛이 짐작됐기 때문이다. 우선 소스의 색이 검다. 케첩이 아닌 간장으로 간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분으로 된 튀김 옷이 얇고 고기 토막이 큼직하다. 마치 두툼한 오리털 점퍼를 걸친 것 같은 여느 탕수육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다.
 
옛날 탕수육은 케첩이 아닌 간장으로 간을 했다. 전통이라 무작정 좋다는 것이 아니다. 간장으로 간을 하면 단맛과 신맛 그리고 감칠맛이 빈다. 이 빈 구석을 채워넣는 일이 번거롭다. 그러니 케첩소스를 선호하고, 결국엔 어디 할 것 없이 비슷한 맛을 낼 수밖에 없다. 맛손짜장에서는 자체 개발한 소스와 육수 그리고 레몬 과육을 사용해 맛을 낸다. 달콤·새콤·짭조름하면서도 선명하고 개성 넘치는 맛이다. 게다가 국내산 돼지고기 등심만을 사용한 고기는 막 삶아낸 수육 마냥 부드럽다. 맛이나 볼 요량으로 덤볐다가 순식간에 탕수육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말았다. 이정도 탕수육이라면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수준이다.
 
좋은 음식점은 어디건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이는 한식이라고 일식이라고 중식이라고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건너왔지만 이제는 어느덧 한국음식이 되어버린 짜장면, 짬뽕, 탕수육 또한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요란하게 전통과 비법을 내세우는 식당일 수록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맛손짜장 역시 전통보다는 초심을, 비법보다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오늘의 맛과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본점과 삼계점에 이어 오는 3월에는 진영점을 개점한다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메뉴:맛손짜장(4천5백원), 맛손짬뽕(6천원), 등심탕수육(1만5천원)
▶연락처:055)324-7888(본점), 055)334-1199(삼계점)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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