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1인칭 시점으로 쓴 전기
마가복음은 실제 예수 모습 담은 걸작
스승 세례 요한 뛰어넘은 제자 예수
처절한 십자가 죽음은 인류사적 사건
마리아 처녀 잉태·12 제자 논쟁적 해석



'도올의 예수전'이라는 부제를 단 <나는 예수입니다>가 출간됐다. 동서 철학을 가로지르면서 1960년대 젊은 시절부터 성서 공부를 했던 도올 김용옥의 신학 공부가 집약돼 있다. 책은 1인칭 시점으로 마가복음에 근거해 예수의 종교 혁명을 풀어 쓴 예수 전기다.
 
도올의 많은 논점들이 그러하지만 이 책은 논쟁적이다. 먼저 마리아의 처녀 잉태는 유치한 얘기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마리아와 요셉의 8남매 중 둘째였는데 어머니 마리아는 중동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여인이었고, 아버지 요셉은 장인급 목수로 고매한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예수의 지식과 교양, 비유 능력은 아버지 요셉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김용옥은 신약성서 4복음서 중 마가복음을 예수의 소박한 모습이 담긴 매우 절제된 걸작으로 보고 있다. 4복음 중 다른 복음서는 가장 먼저 쓰인 마가의 증보판이라는 것이다. 마가를 덧칠해서 예컨대 마태는 구약과 예수의 단절을 연속으로 바꿔놨고, 누가는 예수를 헬레니즘의 국제적 지평 위에 과도하게 치장해 놨고, 요한은 마가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추상적인 철학적 구도 속에 예수를 놓았다는 것이다. 도올은 "예수로 돌아가라"고 할 때 "마가로 돌아가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복음서가 쓰인 중요한 배경 사건이 있었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110만 명이 도륙되면서 예루살렘이 멸망했다. 그 폐허 위에서 새롭게 출발한 기독교 운동이 복음서 출현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AD 71년 마가복음이 맨 처음 나왔고 그 뒤 10년 터울로, 즉 AD 71~100년 마태 누가 요한이 각각 차례로 성립했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실제 예수를 그린 마가복음은 동방박사 경배 따위의 설화를 뺀 채 세례 요한부터 바로 시작한다. 도올이 보기에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한 세례 요한의 등장은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세례 요한은 율법의 구속을 강요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을 내세운 종교운동과 정신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런 세례 요한에게 가서 제자가 되었으며,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가 된다. 예수는 모든 계율을 해탈한 사랑의 하나님과 부드럽고 유순한 하나님을 갈릴리 민중의 지평(유대인과 이방인) 위에서 펼쳤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각을 바꾸어라,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새로 태어나라"고 선포한 예수의 혁명이었다고 한다.
 
예수 제자가 12명이었다는 것도 각색된 것이다. 70여 명이 팔로우가 있었다. 그중 예수의 측근을 지킨 제자는 가버나움의 네 제자(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였다. '갈릴리 촌놈' 예수는 결국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죽는다. 질투하고 복수하고 응징하는 유대의 하나님을 넘어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종교 재판과 행정 재판의 두 과정을 거쳐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예수는 끔찍하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참으로 고독하게 죽어갔다. 그것이 인류사적 사건이었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였다. 도올은 예수 최후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느끼기 위하여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맥없이 힘없이 고통스럽게만 죽어가고 있다는 이 사실은 나라는 인간의 최후적 사실입니다. 모든 신적인 권능이 단절된 상황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이 사실이 나에게는 최종적 기적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수난의 최종적 심연입니다." 이 절망의 심연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과연 세 여인이 예수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예수는 무덤 속에 없었다.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세 여인은 벌벌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빔'과 '떨림', 이것이 나의 마지막을 나타낸 언어입니다. 나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민중의 지평 위에서 부활했습니다. 아니! 부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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