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호 시인

오일장이 열리던 날.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유난히 군것질을 좋아하는지라 아이들이 어릴 땐 과자를 나눠 먹던 일이 종종 있곤 했다. 매번 종합검진 때마다 중성지방이 높아 식단에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그나마 부담이 적은 옥수수 뻥튀기를 사서 궁금할 때 꺼내먹곤 했다.
 
모처럼 선선하고 하늘은 한층 높던 오후, 뒷짐 지고 장터가 열리는 공터에 갔다. 추위는 물러났지만 때가 때인지라 몇몇 분들만 마스크로 무장을 한 채 구경을 나오셨다. 장사하시는 분들도 유난히 적게 나오셨는데 경기가 안 좋다고 연일 뉴스에 나오더니 오일장에도 영향을 끼쳤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쳐 간다.  
 
즉석 두부를 만드시는 분, 생선 가게, 야채 가게, 과일가게, 머리 핀 등 잡화, 전통 과자를 들고 오신 분, 양말가게 등 줄지어서 호객하는 소리가 정겹다. 옥수수 뻥튀기를 사고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집에 김치가 떨어진 것이 생각이 나서 반찬가게에서 배추김치를 샀다.
 
저녁 식사시간. 막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낮에 사 온 김치를 식탁에 올렸다. 유난히 김치를 좋아하는 아들이 "아우, 짜다"며 찡그렸다. 아내는 식단을 저염식으로 하므로 식구들은 나트륨에 민감하다. 나는 고민 끝에 무를 썰어서 섞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간이 짜게 되면 무를 듬성듬성 썰어서 구석구석에 넣어두시던 엄마의 손길이 생각이 난 것이다.
 
엄마는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부안댁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안의 젓갈은 알아준다. 고향집에서 한참을 걸어 나오면 '해창'이라는 작은 어항이 있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철마다 양철 대야에 젓갈 거리를 사오셨다. 아침 일찍 나가시면 해가 중천에야 집에 오셨다. 머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며 끙끙 앓곤 하셨는데도 평생 그 일은 빠뜨리지 않으셨다.
 
그날은 비린내가 담장을 넘어 온 동네가 우리 집 젓갈 담그는 날임을 알아차렸다. 장독대 커다란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서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굵은소금과 젓 거리를 켜켜 담으시고는 맨 위에는 하얗게 소금으로 마감을 하셨다. 이때 엄마는 뭐라고 중얼중얼 속말을 하셨는데 젓갈이 맛깔나게 잘 익으라는 주문을 걸었으리라.
 
엄마는 김장 때나 김치를 담글 때는 가마솥에 젓갈과 약간의 물을 붓고 펄펄 끓여서 그 국물을 채에 걸러서 식힌 다음 양념을 버무리셨다. 김장 전날이면 눈이 맵도록 마늘과 생강을 깠는데 젓갈 달이는 냄새가 참 좋았다. 
 
엄마의 장독대에는 종류별로 젓갈이 항상 있었다. 반찬이 궁할 때는 잘 익은 젓갈에 마늘을 다지고 쪽파를 잘게 썰어서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뜨려서 버무려 놓으면 아주 맛나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었다. 지금도 간혹 식당에서 젓갈 반찬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담날 날이 밝자마자 마트에서 큼직한 무 하나를 사서 깨끗하게 씻은 다음 절반을 뚝 잘라서 한입에 먹기 알맞게 얇게 저며서 큰 볼에 사 온 김치를 넣고 무랑 골고루 섞었다. 잘 버무린 김치를 그냥 냉장고에 넣으면 무가 익지 않을 거 같아서 주방에 두고는 익기를 기다렸다.
 
하룻밤 지나자 뚜껑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폼새가 발효가 되나 보다. 맛을 보니 아직은 무의 매운맛이 남아있어서 좀 더 두기로 했다. 낮에 한 번 더 위아래 뒤집어주고는 하룻밤을 더 지나고 나니 이젠 아삭하면서도 아주 적당히 잘 익은 맛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아내의 손맛에 익숙해진 가족들. 남이 해놓은 음식엔 아무래도 익숙지 않다 보니 외식이 별로 반갑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이 최고다. 요즘 아내의 음식을 먹을 때면 종종 엄마의 손맛이 생각난다. 엄마의 손길과 항아리 가득하던 장독대, 정지와 우물 그리고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던 고향 마을이 많이 그립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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