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더 정확하게 말해서 '베트남 쌀국수'는 한국 외식시장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꼽힌다. 음식에 있어 한국인들은 의외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지금까지 수많은 외국 음식이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잠깐의 유행에 그치고 말았다. 어렵게 뿌리를 내린 음식들 조차 소수의 애호가들이 즐기는 음식으로 남았다. 베트남 쌀국수 역시 그와 유사한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였다. 헌데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

한국에 베트남 쌀국수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지만, 외식 아이템으로 본격 등장한 것은 지난 1998년이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포호아'라는 브랜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이후 베트남 쌀국수 프랜차이즈가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부터는 웰빙 열풍과 더불어 가파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의 베트남 쌀국수는 총 17개 브랜드에 320개가 넘는 매장이 성업 중이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대기업에 의해 한국형 쌀국수 프랜차이즈까지 등장했다.
 
베트남 쌀국수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대중적인 외식 아이템으로 정착한 것에는 워낙 면을 좋아하는 민족성 외에도 몇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첫째, 쇠고기나 해산물로 우려낸 국물에 쌀로 만든 면을 말아 먹는 형태 자체가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하다. 둘째, 베트남 쌀국수는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이미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포호아' 역시 베트남이 아닌 미국 브랜드다. 셋째, 기름기가 적고 각종 채소가 많이 들어 있어 웰빙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넷째, '월남쌈'이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존재한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아침 식사로 애용되는 서민 음식이 월남쌈과 조합을 이루면서 그럴듯한 외식 코스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월남쌈 역시 호주에 정착한 베트남인과 한인들에 의해 현지화된 음식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즐기는 베트남 쌀국수와 월남쌈은 그 원형이 베트남일 뿐 사실은 프랑스·미국·호주 등지에서 오랜 세월 현지화를 거친 음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베트남 쌀국수는 한국에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아시아를 대표하는 면요리였다. 유럽의 대표선수가 이탈리아 출신의 파스타라면 아시아의 대표선수는 베트남 출신의 쌀국수다. 오랜 전통과 다양한 면요리를 자랑하는 중국과 일본이 섭섭해 할지 몰라도 유럽이나 북미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아시아의 면요리는 항상 베트남 쌀국수가 차지하고 있다.
 

▲ 베트남 쌀국수 원형의 맛을 좌우하는 고수.
아오자이, 씨클로와 더불어 베트남을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이 된 쌀국수,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와 전파 경로에 있어 베트남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베트남어로 쌀국수는 '포(Pho, 베트남 발음으로는 '퍼'가 맞지만 '포'가 훨씬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관계로 '포'로 표기한다)'라고 한다. 우선 포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두 가지 설이 있다. 처음으로 포를 팔았던 베트남 하노이 행상들은 점토로 만든 화덕, 이른바 '코프레포(coffre-feu)' 위에서 국수를 삶았다. 불이 있어야 국수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상인에게 '포'가 있느냐고 물었으며 이것이 자연스레 음식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설이다.
 
지난 185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베트남을 침공한 이후 1884년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지배자였던 프랑스인들은 쌀국수에 맛을 들인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오래전부터 국수를 먹어왔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은 쌀국수를 주로 닭육수에 말아 먹었다. 하지만 쇠고기 육수에 길들여진 프랑스인들은 기존의 쌀국수 제조 방식에 자신들의 요리를 접목했다. 때문에 프랑인들은 프랑스식 비프스튜의 일종인 '팟토포(potaufeu, 포토퍼라고도 읽는다)'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설이 맞든지 간에 오늘날 베트남인들과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포'는 온전한 베트남 전통 음식이라기보다는 프랑스 식민지 기간 동안 양국의 식문화가 융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포가 세계로 퍼진 경로를 따라가 보면 분단과 이민의 역사와 마주친다. 원래 쌀국수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북부의 음식이었다. 1954년 프랑스 식민지 지배의 거점이었던 '디엔비엔푸'가 함락되면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호찌민이 이끌던 북부의 공산주의 정권이 모든 식당을 국영화하자 식당 주인들이 대거 남쪽으로 피난을 갔고 일부는 프랑스로 넘어갔다. 이 과정만 놓고 보면, 북한에서 시작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한에 정착한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퇴각하자 1975년 베트남은 전 국토가 공산화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미국과 호주 등지로 탈출한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해외에 이주한 이민자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생계수단은 음식장사다. 비극에서 비롯된 베트남 쌀국수의 두번째 세계화 과정이다.
 
이처럼 베트남 쌀국수는 프랑스 식민 지배 과정을 통해 그 형태가 완성되었으며, 공산혁명과 베트남전쟁의 결과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포' 한그릇에는 베트남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식 세계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그 모델로 베트남 쌀국수를 거론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지만 이는 결과에만 집착한 오류임이 분명하다.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 전통음식을 두고 이런식으로 제 멋대로 해석을 하면, 그것을 보는 우리 심정은 어떨까?
 
▲ 숙주 나물.
인구 50만의 중소도시 김해에서도 베트남 쌀국수의 세계화는 진행중이다. 김해에는 공식적으로 1만6천여 명, 비공식적으로 20여 개국 3만여 명에 이르는 외국인이 거주한다. 그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인데 베트남 출신이 가장 많다. 때문에 동상동과 서상동 주변에는 베트남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두 곳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대중 음식점이라기보다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들의 '아지트' 성격이 강한 탓에 한국인이 출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게다가 가격은 저렴해야 하는데 식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까닭에 음식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요즘의 동상동재래시장은 그야말로 '다문화 시장'이다. 주말 오후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상인들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외국인을 위한 식자재의 종류와 양이 엄청난 속도로 늘었다. 채소 가게에는 당근, 청양고추, 오이, 미나리 등과 더불어 콜라비, 컬리플라워, 청경채, 호부추, 고수, 비트 등이 나란히 쌓여 있다. 가격 역시 대형마트에 비해 절반 이하 수준이다. 한국 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외국인 노동자들은 시장 상인과 흥정까지 한다. 식문화는 재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재료가 바뀌면 음식도 바뀐다. 동상동 재래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재료의 변화는 머지 않아 식탁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김해에서 베트남 사람이 직접 만든, 오리지널리티가 물씬 풍기는 '포'는 조금 더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
 
대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한 곳을 소개하기로 하자. '호아빈'은 전국에 걸쳐 80여 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다. 김해에는 김해점(내동)과 외동점 두 곳의 매장이 있다. 대중화의 선두주자답게 호아빈은 베트남 쌀국수의 원형은 유지하되 그 맛은 철저히 한국인의 기호에 맞췄다. 쌀국수는 태국에서 생산된 것을 수입해 사용하고, 육수는 쇠고기 양지와 사골을 기본으로 몇 가지 한약재를 섞어서 만든다. 강한 향신료를 줄이는 대신 순한 맛과 단 맛을 강조했다. 본사 직영 공장에서 생산한 농축 육수를 각 매장에서 사용하는 '센트럴키친' 방식을 택하고 있어 어느 매장이건 동일한 맛을 유지한다.
 
주말 오후 호아빈 김해점을 찾았다. 연인과 가족외식 테이블이 주를 이루고 있어 베트남 쌀국수의 대중화 정도를 짐작케 한다. 한국인들의 기호에 쌀국수가 먹히는 것은, 순하고 부드러운 국물에 양파·숙주 등의 채소를 넉넉히 올려 먹을 수 있고 칠리소스와 해선장 등으로 매운 맛과 감칠 맛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만의 맛을 연출할 수 있다는 '재미'는 쌀국수의 대중화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호아빈 내부 모습.
물론 취향에 따라서는 대중화 덕분에 아쉬운 부분도 있다. 덥고 습한 지역적 특성상 베트남에서는 쌀국수 육수를 만들 때 팔각, 생강, 회향, 정향나무, 계피 등 강한 향신료를 첨가하고, 먹을 때도 고수, 베트남민트, 바실리카 등의 허브를 듬뿍 올렸다. 이렇게 강한 음식은 처음 접할 때는 거북하지만 일단 친해지고 나면 묘한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원형에 가까운 베트남 쌀국수를 먹어 본 사람일수록 한국화된 쌀국수가 심심하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조연이 바로 '고수'다. 태국·중국·베트남에서는 한국 음식에서 대파나 쪽파를 사용하는 것 만큼이나 흔히 사용한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수가 빠진 쌀국수를 '속 빈 강정' 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고수의 향에 기겁을 한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생선 썩은 냄새', '지독한 암내' 등으로 묘사할 정도다.
 
물론 쌀국수에 고수를 올리건 말건 그것은 개인의 기호의 문제다. 호아빈처럼 순한 쌀국수가 인기를 끄는 것 역시 대중의 취향의 문제다. 이는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음식이 겪는 필연적인 현지화의 과정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기억하셨으면 한다. 음식이든 사람이든 제 나라를 떠났을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과 음식에 얽힌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은 포용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첫걸음이다. 때문에 쌀국수 한 그릇에 얽힌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은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슬기로운 방편이기도 하다. 국제도시 김해는 음식 하나를 보는 시각도 남달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드리는 말씀이다.
 
베트남을 떠나 프랑스·미국·호주를 거쳐 한국에 정착한 쌀국수가 김해의 동상동에서는 또 어떤 현지화를 거칠지 자못 궁금하다.

▶메뉴:쌀국수(7천원~9천5백원), 월남쌈세트(3만3천원)
▶연락처:호아빈 김해점(055-323-8067), 외동점(055-329-3989)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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