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결혼할 때 선물하는 책이 있다. 어떤 주례사보다도 시적이고 함축적이어서 내내 긴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그림책,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두 사람'(사계절)이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렵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종일관 '두 사람'에 대한 비유의 변주를 담고 있다. "열쇠와 자물쇠와 같은 두 사람은, 세상 수많은 열쇠 가운데 단 한 개의 열쇠만이 자물쇠를 열 수 있지만, 가끔 열쇠가 없어지거나 자물쇠가 막히기도 한다. 나란히 한쪽으로 나 있는 창문과도 같은 두 사람은 똑같은 것을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며, 모래시계의 두 그릇처럼 언제나 붙어 있어 위쪽 그릇이 모래를 주면 아래쪽 그릇은 받고 다음 번엔 반대가 된다. 가끔 두 사람은 낮과 밤처럼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노란색과 푸른색처럼 전혀 다르지만 두 가지 색이 만나 들판의 색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직 나를 열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며, 너무나 잘 맞는 사람인가 싶다가도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나를 엄청 힘들게 하지만 매우 힘나게도 하고, 무척 슬프게도 만들지만 몹시 들뜨게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사실은 똑같은 게 아니라 닮은꼴이었을 사람. 끝없이 '차이'를 구분하며 '독립'하고 싶었고, 같은 것을 두고 지루하게 경쟁하는 동안 서로를 북돋우며 어느새 물들어간 사람. 함께인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멀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 연인, 친구, 동료들이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 했던 시인이 있다면, 나를 키운 건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치열하게 상처받고 사랑하면서 모자라고 모난 나를 채우고 넓혀 왔다. 지금도 그렇게 인생의 마디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깊은 사유에서 건져 올린 반짝이는 비유를 담은 글도 매력적이지만, 그런 글을 구체적이면서도 풍부하게 펼쳐 보이는 그림을 놓친다면 이 책을 온전하게 만나지 못한 것이다. 서로를 열 수도 있지만 잠글 수도 있는 미묘하게 다른 열쇠와 자물쇠의 모양이나, 번갈아 주고받는 모래시계의 모래일지라도 저마다 결이 다르고 색이 다르다는 걸 한 번 더 은유하게 하는 건, 철학적인 사색에 힘을 보태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글을 배우기 위한 수단 내지는 어린이들이 보는 유치한 무엇으로 한정하는 오해와 편견을 마주할 때면 너무나 안타깝다. 글과 그림이 만나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내는 그림책은, 하나에 하나를 보태는 단순한 합산이 아니라 서로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화학작용'이다! 그림책은 선과 색과 여백이 새로운 입체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판형을 통해 자유롭고 획기적으로 이미지와 메시지를 보여주는 매체이다. 그래서 혼자 읽을 때가 다르고, 누군가가 읽어줄 때가 또 다르며,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
 
이 책은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며, 고유하게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확장하고 지지하며 조화롭고 현명하게 살아갈 방식을 수긍하게 한다. 사람 속에서 살지만 여전히 사람이 그립고, 끝없이 사람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림책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작가의 생각처럼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김해기적의도서관 김은엽 사서는
1980년 부산 출신. 부산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김해기적의도서관 사서이며, 격려와 응원, 위로와 치유, 공감과 각성을 주는 책을 읽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독서가 마음의 병을 치유한다', '독서치료와 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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