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승패 가른 독감 바이러스
여성인권 운동가 생어와 경구피임약…
역사와 문학·과학을 버무린 약의 역사
최신 의약 정보에 담긴 역사적 배경도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이상을 일으켜 과도한 흥분을 나타내는 질환이다. 의식이 없어지고 팔다리가 뻣뻣하게 굳고 떠는 증상이 생긴다. 1857년 브롬화칼륨이 뇌전증 발작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영국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별이 빛나는 밤'으로 유명한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최초의 뇌전증약을 통해 치료를 받았다. 고집이 세고 괴팍한 성격을 가진 고흐는 친구 고갱과 크게 싸우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 흥분, 환각, 망상 증세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는 3일간 독방에 감금되었다. 고흐는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뇌전증으로 진단받은 그는 브롬화칼륨을 복용하고 3일 만에 진정되었다. 그러자 붕대로 귀를 싸맨 다음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자화상을 그렸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1821~1881)도 뇌전증을 앓았다. 그의 대표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뇌전증을 앓는 서자 스메르차코프가 등장한다.
 
브롬화칼륨은 최면이 생기는 부작용으로 인해 1912년 나온 바비튜레이트 계열의 약 페노바르비탈로 대체되었다. 페노바르비탈은 작용시간이 길어 1일 1회 복용 가능해 지금도 뇌전증에 사용되고 있다. 1938년에는 졸음을 일으키지 않는 뇌전증약 페니토인이 나왔다. 이후 뇌전증약은 계속해서 개선됐고,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발프로산이다.
 
부산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약학 전문가인 저자가 <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를 냈다. 책은 항바이러스제, 신경안정제, 피임약, 탈모 치료제, 위장약, 조현병 치료제, 항우울제, 뇌 질환 치료제, 당뇨약, 구충제, 유전자 치료제 등 인류에게 희망과 미래를 열어준 치료약의 역사를 담았다. 역사, 문학, 미술 등 인문학적 지식과 과학적 이야기를 버무려 약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최신 의약정보를 전하면서도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알기 쉽게 전한다. 책은 지난해 출간된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의 후속편.
 
독일 문학가 헤르만 헤세가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우울했던 헤세의 수도원 생활을 그렸다. 19세기 후반 기독교 전통이 강했던 독일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는 것을 엘리트 코스로 여겼다. 헤세 역시 유명한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흥미와 소질을 억누르고 학업에 전념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소설에서 수레바퀴는 개인으로서는 거역할 수 없는 기존 사회질서를 상징한다. 주인공인 한스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신학교의 규율과 일방적 가치관을 주입하는 교육으로 인해 점차 공부에 흥미를 잃는다. 절친했던 하일러마저 돌출행동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하자 견디지 못한 한스는 신경쇠약을 앓다가 결국 강어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한스가 우울증 치료약을 먹었으면 인생이 달라졌겠지만, 당시에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이 없었다. 한스와 달리 헤세는 문학에 심취해 우울증을 극복했고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대문호가 됐다.
 
미국 여성인권 운동가 마거릿 생어는 이민 온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석수장이였던 아버지는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생어의 어머니는 18번 임신해 7번 유산하고 11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건강을 해친 생어의 어머니는 50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여성의 피임할 권리를 처음 주장했던 생어는 여권 신장 지지자였던 캐서린 매코믹과 힘을 모아 생식 생물학 연구자인 핑커스가 경구피임약을 개발하는 것을 지원했다.
 
1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른 것은 독감 바이러스였다.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원인은 제국주의 국가 간의 식민지 쟁탈이었다. 영국, 프랑스는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에 비해 통일과 산업화가 늦었던 독일은 해외에서 차지할 나라가 얼마 없었다. 선진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국가의 갈등은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이라는 민족문제와 겹치면서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은 점령 지역 유지와 방어를 위해, 연합군은 적을 저지하기 위해 참호를 팠다. 상대편 참호를 점령하기 위해 끝없는 소모전이 벌어졌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가 이듬해 봄부터 전쟁에서 빠졌다. 독일은 러시아 전선에 투입했던 100만 명의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려 총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이라는 복병과 미군 참전으로 독일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1918~1920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앞당겨졌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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