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저서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인간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식동물이나 육식동물은 이미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가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다. 하지만 잡식동물은 다르다. 선택 가능한 수많은 먹을거리들 가운데 무엇이 안전한지 가려내고,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잡식동물인 인간이 처한 딜레마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크고 복잡하게 발달한 것도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 부산 노보텔 앰배서더 송연순(왼쪽) 총지배인이 수선재에서 봄나물 요리를 맛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초식을 함에 있어서도 인간은 딜레마에 빠졌다. 먹긴 먹어야겠는데 육식만큼 본능을 자극하지도 않을 뿐더러 맛도 없었다. 채소를 조금 더 맛있게 혹은 더 많이 먹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서양에서는 그 방법으로 드레싱(dressing)을 만들었다. 샐러드(salad)의 어원이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살(sal)'이라는 사실에서 유추해보면 최초의 드레싱은 소금이었을 것이다. 이후 식초·오일·향신료 등으로 종류가 늘고 조리법도 다양해졌다.
 
한국은 이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을 택했는데, 그 모든 역사와 지혜가 담긴 단어가 바로 '나물'이다. 아마도 나물은 한식이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일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다. 개화기 때 내한했던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먹을 수 있는 나물의 가짓수를 한국 사람만큼 많이 알고 있는 민족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서울 고메 2011'에 초청된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은 같은 재료라도 볶거나 말리는 등 조리하고 저장하는 방법에 따라 질감과 맛이 달라지는 나물에 대해 깊은 관심과 찬사를 보냈다.
 
나물은 우선 그 가짓수부터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우리말 속에 그 스케일이 숨어있다.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란 풀을 '푸새'라 하고, 무·배추·상추·마늘·고추처럼 사람이 심어서 거둔 것을 '남새'라 하며, 이 모두를 통틀어 '푸성귀'라고 한다. 따라서 푸성귀라면 무엇이든 나물의 재료가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에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은 450여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나물은 재료의 특성에 따라 먹는 부위가 달랐고, 먹는 부위에 따라 채집 방식 또한 달랐다. 뿌리째 먹는 나물은 캐고, 뿌리를 먹지 않고 잎을 먹는 것은 뜯고, 고사리처럼 줄기를 먹는 것은 꺾는다.
 
조리법 역시 재료의 특성에 따라 날것 그대로 사용하는 것, 데치는 것, 볶는 것 등으로 나뉘었는데 어느 방식을 선택하건 재료 본연의 향과 식감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맛을 내는 양념 역시 간장·된장·초고추장·소금 등 최소한의 것들만 사용했으며, 이때도 재료와 양념장의 궁합을 꼼꼼하게 살폈다.
 
나물을 데쳐 먹는 것은 나물이 가진 향과 영양소의 파괴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음식이 부드럽게 넘어가고 속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데친 나물은 생채소보다 양이 4분의 1로 줄어들어 많이 먹게 되는데, 이때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게 되어 변비를 비롯한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해준다.
 
▲ 세발나물주먹밥과 머위쌈밥.

한국은 산이 많고 청명하여 계절마다 다양한 나물을 먹을 수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제철에 나는 나물 외에도 그때그때의 나물들을 여러 방법으로 말려두었다가 겨울이나 새싹이 돋지 않는 이른 봄에 불려 썼다. 따라서 나물은 연중 어느 때나 밥상에 올랐다. 밥이 중심인 우리네 밥상에서 밥과 나물은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다.
 
사철 흔하다지만 봄이야말로 진정한 '나물의 계절'이다. 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우리 몸에도 변화가 생긴다. 겨우내 움츠렸던 근육이 이완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영양분의 소모량이 는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봄나물은 그래서 제격이다.
 
봄나물의 대표 선수들만 살펴보자. 두릅은 산나물로는 드물게 단백질이 많고, 냉이는 성질이 순해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돌나물은 칼슘이 우유의 2배에 이르고, 취나물은 비타민A가 많아 혈액 순환을 돕고, 봄동은 항암·항노화 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이 배추의 30배가 넘으며, 달래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양기를 보강해 준다. 한편 봄에 나는 어린 싹이 가진 약한 쓴맛은 열을 내리고, 나른해진 몸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우리 선조들은 절식(節食)이라고 해서, 철마다 그 계절에 나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시절을 즐기고 건강을 지켰다. 인파에 치이고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봄나들이가 아니면 어떠랴. 다양한 봄나물로 차려진 밥상으로도 이 봄의 화사함과 풍요로움을 만끽하기엔 충분할 것이다. 밥상 차릴 엄두가 나지 않는 형편이라면 주변에서 나물 하나라도 제대로 내는 식당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장유면 관동리의 '수선재', 이동의 '칠산고가', 외동의 '토란과찜국' 등이 가짓수나 손맛에 있어 나물맛을 제법 느낄 수 있는 음식점이다.


Tip. 달래전 만들기
알싸한 맛과 향 … 알리신 성분 많아 항산화·항암 효과 탁월

봄나물을 이용한 요리 중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이다. 그중에서도 알싸한 맛과 향이 특징인 달래는 마늘에도 들어있는 알리신 성분이 많아 항산화와 항암 효과가 있다. 달래를 이용한 전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달래는 뿌리 주변이 매끄럽고 줄기가 푸른 것을 고른다. 뿌리의 흙을 털어내고 한꺼풀 벗겨 손질한 후 깨끗이 씻어준다. 밀가루와 물, 국간장, 참기름을 넣어서 밀가루 즙을 만드는데 흘러내릴 정도로 묽게 만들어 준다. 준비해 놓은 밀가루 즙에 손질한 달래를 담그고 노릇하게 구워내면 완성.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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