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파니노 샌드위치 /사진=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은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하면서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해야 한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개념상 국어인 외래어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섣부른 주장 때문에 자신의 진의조차 왜곡되긴 했지만, 한편으론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때는 1996년 여름. 한 해 뒤에 나라가 부도나는 줄도 모른 채 온 국민은 앞다투어 해외여행에 나섰다. 기자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해 유럽을 헤매고 다녔다. 첫번째 여행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겪었던 일이다.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 있는 튈르리공원에서 여유롭게 점심식사를 할 요량으로 공원 내의 작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메뉴판에 'sandwich'라는 낯익은 단어가 보였다. '샌드위치'라고 또박또박 발음을 했건만 당최 알아듣질 못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6년 이상 영어 정규교육을 받았건만 외래어로 익숙해진 샌드위치의 영어 발음을 모르고 있었다. 종업원이 '쌘위지?'라고 묻길래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아마도 그 후로 외래어에 대한 정확한 발음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던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음식 가운데 샌드위치 만큼 그 탄생 스토리가 확실하고 구체적인 경우도 드물다. 샌드위치는 18세기 영국 샌드위치 가문의 4번째 백작인 존 몬터규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박에 빠져있던 백작은 카드를 잠시라도 놓기 싫어 두 조각의 빵 사이에 로스트비프를 끼운 것으로 식사를 해결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샌드위치의 유래가 됐다. 존 몬터규의 후손인 11번째 샌드위치 백작은 지금 런던에서 '얼 오브 샌드위치(샌드위치 백작)'라는 패스트푸드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도박판에서 비롯된 '가문의 영광'인 셈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말자. 존 몬터규 백작 덕분에 샌드위치라는 명칭이 정착됐을 뿐, 6천 년에 이르는 빵의 역사에서 빵 사이에 고기나 채소 등을 끼워서 먹는 음식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존재해 왔다.
 
▲ 깔끔하고 모던하게 꾸려진 실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얼마전까지 한국에서 샌드위치는 집에서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는 간편식 내지는 토스트로 대표되는 길거리음식 정도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웰빙 트렌드에 힘입어, 햄버거보다 신선하고 칼로리도 낮은 음식임을 강조하는 샌드위치 전문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격 또한 어지간한 한끼 식사를 훌쩍 넘을 정도로 고가인 경우가 많다. 시장성이 높다보니 전 세계 3만6천 개의 매장을 거느린 '써브웨이'를 비롯한 외국계 브랜드와 신세계와 CJ푸드빌 등 대기업의 진출 또한 늘고 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시작한 '부첼라'라는 샌드위치전문점은 지난 2008년 지분의 50%를 15억원에 매일유업에 매각함으로써 업계의 성공신화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이러한 샌드위치 열풍이 김해에까지 상륙, 장유면 관동리 율하마을에도 샌드위치 전문점이 등장했다. 요즘 관동리는 '상전벽해'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자고 나면 새로운 외식업체가 속속 문을 연다. 특히 1㎞에 이르는 율하천 변에는 개성 넘치는 커피전문점과 카페가 속속 들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니 율하천이 바라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부쩍 늘고 있다. 공간의 변화는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이끌어내고, 사람들이 의외로 그러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한다.
 
'카페 파니노'는 그 이름부터가 샌드위치 전문점답다. 파니노(Panino)는 이탈리아어로 모닝빵처럼 작은 롤빵과 함께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파니니(Panini) 역시 샌드위치를 의미하는데 이때 파니니는 빵을 굽는 도구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는 노동자들이 일하던 중간에 먹던 것에서 유래된 까닭에 빵 사이에 샐러드나 햄, 치즈 등 비교적 간단한 재료를 넣는 것이 특징이었다.
 
여기서 잠깐, 몰라도 상관없는 사소한 상식 하나만 확인하고 가자. 파니노, 파니니는 물론이고 파스타, 스파게티, 파네(빵) 등 이탈리아 음식용어에는 유난히 '파'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이는 모두 빵의 어원인 라틴어 '파니스(panis)'의 '파(pa)'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페 파니노'에서는 치즈와 토마토 등 기본 재료에 닭고기, 쇠고기, 새우, 연어 등이 각각 들어간 7가지 샌드위치를 판매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는 빵과 빵 사이에 치즈 혹은 살라미, 초리조, 프로슈토 등 이탈리아식 햄을 끼워 먹는 간단한 음식이었다. 바로 이 단순함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보다 건강한' 음식으로 탈바꿈했고, 순식간에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는 이탈리아식이 샌드위치계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파니노에서 만드는 샌드위치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뉴욕을 거쳐 한국에서 다시 한번 더 현지화 과정을 겪은 음식이다. 때문에 의외로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카프레제, 치킨브레스트, 립비프 등 인기가 높다는 세 가지 샌드위치를 주문해 봤다. '카프레제샌드위치'는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에 발사믹 식초를 뿌린 샐러드에서 따온 이름처럼 빵 사이에 세 가지 치즈와 토마토를 끼웠다. 대표적인 서양 허브인 바질에 올리브유를 넣고 간 바질페스토와 발사믹 식초에 절인 양파를 더함으로써 맛에 임팩트를 줬다. 세 가지 치즈를 바질이 묶어 줌으로써 맛은 담백하면서도 진한 치즈향이 매력적이다.
 
'치킨브레스트샌드위치'의 경우 치즈와 발사믹 식초에 절인 양파 그리고 닭가슴살이 조화를 이룬다. 특히 닭가슴살을 각종 향신료와 허브로 밑간(시즈닝)을 해 충분히 숙성시킨 덕에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육질이 특징이다. 여기에 닭과 잘 어울리는 머스터드드레싱을 곁들였다. '립비프샌드위치'는 떡갈비를 사용해 남녀노소 누구나 반가워할 조합이다. 샌드위치 자체의 크기도 적당한데다 모든 메뉴에 래디치오, 비타민, 레드치커리, 로즈케일, 롤라로사 등 다양한 채소에 아몬드와 올리브로 토핑한 샐러드를 곁들임으로써 양과 영양면에서 한끼 식사로 손색없는 구성이다.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비롯해 커피와 각종 음료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유행을 좇기보다는 맛과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곳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용하고 있는 접시와 음료수 잔 등이다. 파니노에서는 '식탁위의 정원' 혹은 '주부의 로망'이라 불리는 영국제 '포트메리온' 도자기와 미국인들이 자국의 명품 브랜드로 착각할 정도로 유명한 일본제 '노리타케' 도자기를 기본 식기로 사용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손님 치를 때나 한번씩 꺼내 쓰는 식기를 대중 음식점에서 사용하다 보니 그만큼 음식과 음료의 격이 높아 보인다. 이런 섬세한 노력들이 하나 둘씩 모여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카페파니노는 외식업체가 속속 문을 열고 있는 장유 율하천 변에 자리잡아 이국적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샌드위치나 햄버거처럼 빵 사이에 재료를 넣어 먹는 음식의 경우 속을 채우는 채료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빵이다. 이는 단순히 빵이 좋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료와 빵의 조화가 중요하다. 파니노처럼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를 만드는 경우에는 치아바타(Ciabatta)라는 빵을 사용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곡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개발된 치아바타는 적은 반죽을 발효시켜 부피를 늘려 만들었다. 속에 구멍이 많은 대신 촉촉하고 쫄깃한 특징이 있다. 이런 빈약함이 오히려 채소, 치즈, 고기의 맛과 질감을 살리는 반전을 도모한다. 헌데 파니노의 치아바타는 속이 지나치게 꽉 찼다. 속 재료가 풍성한데다 빵까지 밀도가 높으니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때문에 치아바타의 종류를 달리함으로써 고객의 기호에 따라 선택권을 주는 게 어떨까 싶다.
 
꽃샘추위가 살짝 기승을 부리긴 해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장유면 관동리 율하천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가벼운 산책 후에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을 곁들인 점심은 어떨까? 봄바람의 유혹을 도무지 견딜 수 없다면 야외에서의 식사도 권할만 하다. '카페 파니노'에서는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제법 모양새 있게 포장도 해 준다.

>> 샌드위치의 역사
18세기 영국 샌드위치 가문. 도박에 빠져 있던 4번째 백작 존 몬터규 잠시라도 카드 놓기 싫어
빵 사이 로스트비프 끼워 식사 해결한 데서 유래.

샌드위치라는 이름만 존 몬터규 백작에서 시작됐을 뿐 빵 역사 6000년이나 돼
고기나 채소 끼워 먹는 음식 이미 여러 나라에서 존재해.


(폐업했습니다)
▶메뉴:샌드위치(7천~8천원), 샐러드(9천원)
▶위치:김해시 장유면 관동리 1080-6
▶연락처:070-4236-1021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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