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하 시인

삶이 때때로 힘겹다고 느껴지는가? 혹시, 운명이란 것에 희롱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그랬을 것이고, 일에 대해서도 그랬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그 사람을 덜 사랑해서도 아니었을 것이고, 또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운이 맞지 않아서, 혹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과 맞지 않아서 실패한 경우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런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지? 그저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가?
 
시냇가에 나가보면 매끄러운 조약돌이 많이 있다. 그 예쁘고 고운 조약돌도 처음에는 거친 돌멩이였을 것이다. 거친 돌멩이가 매끄러운 조약돌이 되기까지는 거센 물살에 깎이고 시달려야 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뒤따른다. 그러한 시련과 각고의 노력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예쁜 조약돌이 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인생에 있어 약간의 실패는 나중에 올 더 큰 기쁨을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패를 딛고 일어나 다시금 도전하는 자세, 즉 실패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삶의 모양새는 결정되어진다는 것을. 
 
행복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결코 비옥한 땅이 아니다. 오히려, 절망과 좌절이라는 돌멩이로 뒤덮인 황무지일수도 있다. 한 번쯤 절망에 빠져보지 않고서, 한 번쯤 좌절을 겪어보지 않고서 우리가 어찌 행복의 진정한 값을 알 수 있을까?
 
절망과 좌절이라는 것은 우리가 참된 행복을 이루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절망스럽다고 실의에 잠겨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잠깐 좌절을 겪었다고 해서 한숨만 내쉬고 있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더 큰 행복, 참된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니겠는가.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 주린 배를 안고 허름한 여관에 든 두 사내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방에 맛있는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바구니 밑에는 '꺼낼 수 있는 분만 드세요'라는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너무 높아서 꺼낼 수가 없겠군."
 
한 사내는 실망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다른 사내는 달랐다. 
 
"너무 높긴 하지만 누군가 저기에 매달았기 때문에 저기 있는 게 아니겠어? 그러니 나도 분명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사내는 그 집의 담에 기대어 있던 사다리를 가져다가 과일을 꺼내 맛있게 먹었다. 
 
맛있는 과일을 눈앞에 두고서 두 사람이 취한 행동은 각기 달랐다. 한 사내는 미리 겁을 먹고 포기했지만 또 다른 사내는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자세로 대했기에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바구니에 과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중요한 그 무엇이 담겨져 있다면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인생은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해보기도 전에 미리부터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궁핍하게 만든다. 설령 그것이 안 되는 일일지라도 해본 다음에 포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라는 자기 다짐과 굳은 결심은 때로 훌륭한 성과를 이루게 해준다. 비록 목적지까지 닿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고 이유일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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