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가치 재발견 시리즈 제1권
금동대향로·귀면와·말머리장식뿔잔…
선사 ~ 통일신라 유물 아름다움 증명




<한류 미학>은 우리 유물을 디자인 미학으로 들여다보는 새로운 관점의 책이다. 삶 속의 사용성과 아름다움이란 관점으로 우리 문화의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한다. 결론은 우리 유물 속에 이미 세계로 뻗어가는 21세기 K한류 문화의 씨앗을 내장한 대단한 것들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체 계획분 5권 중의 제 1권인데 선사~통일신라시대 유물 30점이 구현한 품격 높은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책의 특징은 저자가 직접 그린 디자인 이미지로 유물의 뛰어난 디테일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디자인 스케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 가령 백제 조형미의 대서사시가 금동대향로다. 저자는 향로 꼭대기 봉황 형상의 속도감 넘치는 선과 100여 개 캐릭터를 품은 몸통도 대단하지만 이 향로의 절정은 용이 꿈틀거리는 받침대에 있다고 한다. 받침대 용은 입으로 몸통 아래를 물고 치솟으면서 현란하고 힘차게 꿈틀거리는데 머리 쪽으로 들어올린 용의 다리 하나는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조형미의 극치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하나의 드라마 같은 수준이요 솜씨라는 것이다.
 
고구려 강서대묘 사신도는 고구려의 문화적 저력이 마지막으로 토해낸 최후의 걸작이다. 사신도 대표작은 현무도다. 튼튼한 구도 위에 뱀을 그려 넣어 휘황찬란한 곡선이 춤을 추도록 한 것을 두고 저자는 신의 한 수라고 말한다.
 
저자는 통일신라 대표 유물을 귀면와(鬼面瓦)로 꼽는다. 조형적 완성도, 세련된 스타일, 힘찬 인상이 중국과 일본의 유물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귀면와는 주변의 나쁜 공기를 모두 빨아들이는 힘이 있으면서 대단한 완성도로 무섭기보다는 아름답다고 한다. 조형 하나가 악귀와 사악한 기운을 제압하는 품격과 웅혼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저자는 이를 귀면와가 아니라 차라리 용면와(龍面瓦)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동아대박물관이 소장한 가야의 말머리장식뿔잔은 결코 무심하게 지나칠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콜라주 기법이 가야시대에 구현됐다는 거다. 말머리와 뿔잔을 불협화음적으로 버무려놨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추상과 은유를 이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구사한다는 것은 그 시대가 그 만큼 성숙해 있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가야라는 나라가 더 신비롭게 다가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삼한시대 오리모양토기, 고구려 UFO 화살촉, 무령왕릉 금관, 가야의 갑옷, 신라의 토우가 붙은 토기 등이 품은 한류 미학을 발라내고 있다.
 
각 시대를 꿰는 저자의 시각은 들어볼 만하다. 고려시대 문화는 암흑기 문화가 아니라 귀족적으로 가장 찬란한 수준이었다면서 이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 문화는 어수룩한 단순함이 아니라 주자학 이념이 구현된 '추상'과 '형식'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거다. 저자는 특히 19세기 조선 후기를 크게 주목한다. 동학 탄생, 추사 활동, 최한기 기철학 등장으로 표현되는 대중의 시대와 동서문명이 만났던 문화접변의 시ㄷ대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대에 민족·시대·지역·개인 양식이 예술로 집대성됐다고 본다. 병풍 그림, 추사체, 청화백자, 강화도 성공회성당 등이 그 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선 것은 19세기 때부터 준비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류 미학>은 우리 역사상의 재구성이라는 엄청난 기획을 바탕에 깔고 있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