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막창  사진/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mail.net
오전부터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점심 때가 되자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밥 생각 보다 '낮술' 생각이 오히려 간절했다. 비오는 날이면 왜 낮술이 땡기는 걸까? 인간심리를 규명하고 분석한 수 많은 연구결과가 있건만, 정작 이런 생활밀착형 조건반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하기야 낮술 못마셔 죽었다는 사람은 없으니 이런 시덥잖은 문제는 잠시 미뤄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낮술은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지위가 아주 높거나 혹은 지위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탈이다. 지위가 아주 없지도, 그렇다고 높지도 않은 나같은 서민은 그저 욕망을 지그시 누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기다림이 있어 그럭저럭 참을만 했다. 저녁에는 막창집 취재가 예정되어 있었다. 봄비 내리는 날 저녁에 '막창과 소주'라! 풍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운치있는 조합임에 분명하다.

불현듯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이 '막창'이란 부위는 대체 언제부터 친숙하게 된 것일까?
 
김해의 '뒷고기', 대구의 '막창구이', 전남 함평의 '돼지 머릿고기 비빔밥' 처럼 큰 우시장이나 도축장이 있던 곳에서는 허드레 부위를 사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반듯한 고기는 팔아야 하니 그나마 손에 쥘 수 있는 건 부산물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들 음식은 태생부터가 서민적이다. 삶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김해의 뒷고기나, 머릿고기가 육회로 대체된 함평의 비빔밥은 세월의 변화와 더불어 어엿한 향토 음식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막창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자 고단백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된 대구 막창구이의 변신은 그 보다는 조금 더 드라마틱하다. 시작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 성당못 옆에 도축장이 생기면서 소나 돼지의 부산물이 많이 나왔다. 이때부터 내장을 활용한 순대, 막창탕 등이 관심을 모으다 1970년대 초부터 연탄불에 굽는 막창구이가 등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순식간에 대구 전역으로 퍼져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막창골목이 형성됐다. 연기를 피우며 고기를 구워 먹는 행위에 대한 한국인들의 욕망은 집념을 넘어 집착에 가깝다. 허나 이때만해도 대구 막창구이는 지역의 명물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무릇 향토음식이 순식간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는 이면에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있다. 삼겹살이라는 외식 아이템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업자들은 항정살, 갈비살, 막창 등 특수 부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돼지고기 수입이 본격화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한 마리를 잡아 봐야 몇 인분 나오지 않는 부위를 가지고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에는 국내에서 도축되는 규모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나듯 생겨나던 막창구이전문점은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등장과 함께 지난 2007년부터 전국적인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두번째 의문은 막창은 대체 소의 것일까? 돼지의 것일까? 둘 다의 것이라면 어느 부위를 이르는 명칭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막창은 소와 돼지 둘 다의 것이다. '막'이라는 단어가 접두사로 쓰이면 '거친, 닥치는대로' 혹은 '마지막'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이 중 막창에서의 '막'은 마지막을 뜻한다. 그럼 대체 무엇의 마지막일까?
 
▲ 된장소스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소냐 돼지냐에 따라 그 부위가 다르다. 소처럼 성질이 온순하고 특별한 공격과 방어수단이 없는 동물들은 먹이(풀)가 보이면 앞뒤 잴 것 없이 먹어 두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몸 속에 가득 쟁여 놓았다가 천천히 꺼내 먹는 과정이 바로 되새김질이다. 이를 위해 소는 4개의 위장을 가지고 있다.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 진화로 이어진 셈이다. 이 중 첫번째 위를 양, 두번째 위를 벌집위, 세번째 위를 처녑(천엽)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위를 막창 또는 홍창이라고 한다. 막창 다음에는 소의 창자, 즉 곱창(소창)과 대창이 이어진다.
 
위장이 하나밖에 없는 돼지는 오소리감투라는 위장 다음에 창자가 이어지는데, 이 창자를 곱창(소창), 대창, 막창으로 나눈다. 따라서 같은 막창이라도 소는 마지막 위장을, 돼지는 창자 끝 부분을 의미한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막창은 소보다는 돼지가 대세가 되었다.
 
돼지가 대세가 된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부위가 가지는 고약한 특성이다. 돼지 막창은 대창이 끝나는 부위에서 시작해 항문 직전까지 약 30cm 정도를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 부위는 냄새가 지독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름이 많아 손질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밀가루를 사용해 아무리 뽀득뽀득 씻어도 돼지가 평생에 걸쳐 축적한 냄새를 지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상동재래시장의 '원조돼지국밥'에 가면 단지 씻어내기만 한, 주름이 선명한 생막창을 맛볼 수 있다. 냄새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 해 봐야 구울 때 후추를 뿌리고 소주를 붓는 게 전부다. 이렇게 구워진 막창 한 점을 씹다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로테스크한 향이 훅하고 비강을 자극한다. 초심자라면 당황스럽다 못해 역겨울 정도다. 허나 참는 자에게 복이 있고, 고통 뒤에 오는 열매는 달다. 씹으면 씹을 수록 고소한 감칠 맛이 우러나는데, 그 맛이 여느 막창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이 생막창에 길들여지면 어지간한 막창은 싱거울 정도다. 그러나 대단히 아쉽게도 이를 지면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아무리 비위가 강한 사람도 이 막창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상추 겉절이
대신 수위를 좀 낮추기로 하자. 어방동에 있는 '삼보생막창'은 주당들 사이에서 대중화된 대구식 막창구이가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다. 특정 지역의 음식이 프렌차이즈 아이템으로 채택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젊은 층, 특히 여성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막창은 고단백 저콜레스테롤에 분해작용이 뛰어난 식품이라 다이어트에 신경을 많이 쓰는 여성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안주다. 문제는 냄새.
 
대구식 막창구이는 이 냄새를 잡기 위해 삶는 방법을 택한다. 삶을 때는 끓는 물에 된장, 간장, 한약재, 양파 등을 넣는데 관건은 타이밍이다. 너무 삶으면 맛이 빠져나가고 육질이 질겨지며, 덜 삶으면 고약한 냄새가 채 가시질 않는다. 삼보생막창은 손님에게 내기 전에 삶아 내는데 그 타이밍이 적당하다. 삶았다기 보다는 조금 오래 데친 수준인데, 냄새는 잡고 맛과 육질은 살렸다. 요즘은 대부분의 전문점에서 수입 막창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재료 자체의 차별성 보다는 삶는 타이밍이 막창집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 시원한 국물김치
대구식 막창구이의 대중화에 기여한 또 하나의 비결은 된장소스. 된장, 콩가루, 땅콩가루, 고추가루, 조미료 등을 섞어 만든 소스에 쪽파, 청양고추, 오이, 미나리, 마늘 등 집집마다 특색있는 고명을 곁들인다. 대구에서는 이 된장소스의 맛에 따라 막창전문점의 호불호가 갈릴 정도다. 삼보생막창의 경우 고명이 다양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울 뿐, 된장소스 자체의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다. 청양고추나 쪽파 혹은 다진 마늘을 추가로 부탁하면 훨씬 풍부한 소스맛을 느낄 수 있다.
 
삼보생막창에서는 돼지 막창과 더불어 귀한 국내산 소 막창도 함께 맛볼 수 있다. 돼지 막창이 대세이긴 해도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특성상 내장(위)의 잦은 연동운동에 따른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씹다보면 돼지와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 소막창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저녁. 노릇노릇 구워진 막창 한 점을 된장소스에 푹 담궈 입안으로 가져간다. 처음에는 알싸한 된장소스 맛이 지배적이다가 이내 보드랍게 쫄깃거리는 막창이 살캉살캉 씹히면서 특유의 고소한 맛이 우러난다. 아무리 정성들여 씻고 제대로 삶아냈다 한들 타고난 본성을 뿌리째 없앨 수는 없는 법. 언뜻언뜻 막창 특유의 냄새가 아련히 느껴진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면 젓가락은 어느새 또 한 점을 뒤적이고 있다.
 
막창을 씹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 또한 이처럼 질기고 모진 것이다. 아둥바둥 살다보면 궂은 일이 더 많겠지만 버티다 보면 웃을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 날이 언제일지 몰라 지치면 건너편에 앉은 동행과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허허로이 웃어 넘기자. 그러면 또 그럭저럭 버틸 힘이 생길 터. 버티자, 버티다보면…'
 
이러니 천상 막창은 서민의 음식이고 더할 나위 없는 소주 안주다. 점심에 낮술을 참길 참 잘했다.

▶메뉴:돼지막창(1인분 7천원), 소막창(1인분 1만원)
▶위치:김해시 어방동 1092-12
▶연락처:055)314-0081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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