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 재배면적 넓지 않아도 맛과 향 뛰어나 최고 품질로 인정
동쪽 시루봉에서 마을이름 유래
백두대간 끝 '백두산'은 자랑거리
190여 가구 480여명 주민, 맑은 공기 후덕한 인심에 식구처럼 오순도순

대동면 시례마을로 접어들자, 정말 부추 향이 맡아졌다. 부추 향이 난다는 기자의 말에 "우린 여기 살고 있으니까 잘 모르겠는데, 참말 향기가 나는교?" 지나가던 할머니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예안리 시례마을은 '부추'로 유명한 마을이다. 지금은 경작지가 줄어들어 예전만큼 부추를 많이 재배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시례마을은 부추로 유명하다.
 
햇부추가 올라온 부추밭 너머 시례마을 들판에는 쑥을 캐러 나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마을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쑥을 뜯느라 무아지경이다. "먹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부지런한 손길에 한 바구니가 금세 가득 차버린다. 바구니는 몇 번이나 채워졌지만, 봄 들판의 쑥은 눈 가는 데마다 돋아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사회복지법인 동광육아원이 있다. 지난 1953년 전쟁고아 35명을 수용해 자리잡은 시설이다. 동광육아원은 김해 아동복지의 역사와 전통을 말해준다. 조리사 박찬임 씨가 육아원 앞에서 쑥을 뜯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쑥을 넣은 시래기 된장국을 잘 먹어요. 쑥떡도 해먹고, 쑥차도 만들어 먹지요."
 
마을 회관은 새봄맞이 단장이 한창이다. 시례마을 남자 몇 명이 회관에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에 끝내야 하는 일이라 손길이 쉴 틈이 없다. 꼼꼼하게 칠을 하는 손길을 잠깐 지켜보는 사이 회관은 말끔하게 단장되어 마을 전체가 환해졌다.
 
시례마을이란 이름은 회관에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시루봉에서 왔다. 시루처럼 생긴 봉우리라 해서 시루봉이다. 그래서 마을은 시루골, 시릿골로 불리다가 시롓골로 바뀐 뒤 시례마을이 됐다.
 
시례마을은 대동면에서 다섯 번째로 큰 마을이다. 현재 190여 가구, 4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추, 방아, 산딸기를 재배하는 농업이 주 생업이다. 논에서 재배하는 부추는 흙 내음이 많이 나지만, 산이 가까운 돌밭에서 나는 시례부추는 맛도 향도 뛰어나다. 그래서 같은 부추라도 시례 부추는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으며 값을 더 받는다.
 
마을에는 세 그루의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 할매나무(팽나무), 당산 할배나무(팽나무) 그리고 소나무. 마을의 당제는 이 세 그루에 모두 지낸다. 김해의 다른 자연마을들이 대부분 정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내는데, 시례마을은 정월 초이튿날 지낸다. 음력설을 지낸 다음날 오전 9시부터 당제를 지내는데, 세 곳에 제를 올리고 나면 오후가 된다.
 
시루봉 능선을 올라가면 백두산이 있다. 백두대간에서 불거진 낙남정맥의 최남단에 있는 산의 정상이라는 의미에서 이름도 백두산이다. "우리 마을에는 백두산의 정기가 흐르고 있어요"라며 김태완 이장은 마을 자랑에 여념이 없다.
 
▲ 부추로 유명한 시례마을에 들어서면 정말 부추 향이 난다. 대동 들판 곳곳에서 쑥 캐는 사람들이 봄을 알렸다. 동광육아원 조리사 박찬임씨가 쑥을 캐고 있다.
"예전에는 마을 집에 담이 없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신뢰가 깊고, 온순하고, 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마을 길이 무척 좁았어요. 리어카 하나가 지나가면 꽉 차고, 두 사람이 걸으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지요. 새마을운동으로 길을 넓힐 때 집집마다 자발적으로 20여 평씩 땅을 내놓았습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 이장은 어린 시절의 좁은 길을 회상했다. 애초에는 마을 입구까지 리어카로 나무 장작을 실어다 놓으면 지게에 장작을 지고 옆으로 게걸음을 걸어야 했다. 집집마다 어렵고 불편했으니 길을 넓힐 때는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이 됐다.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모두들 기꺼이 자기 땅을 내놓아 길을 만든 지 몇 십 년이 지났다.
 
"마을 사람들의 넓은 마음이 길을 넓혔지요." 김 이장은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시례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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