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자 시의원

우리는 결혼한 지 한 달 쯤 된 새내기 부부였다. '하룻밤에 만리성을 쌓는다’지만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관계가 갑자기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서로 예의범절이 깍듯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기선을 제압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게는 강하였고 남편도 그러하였고 서로가 눈치로 재어가며 자존심을 고수하던 때였다. 
 
우리말 '서너 되' '사나흘' '조만간' '조금 있다' 같은 표현처럼 '좀 있다 갈게.' 란 전화에서 '좀' 이라는 단어는 명확성이 너무나 불분명했다. 그 밤 동안 서너 번의 전화로 '좀'이란 말을 전한 관계로 나는 기다렸다. 들어오는 생각들마다 괘씸함이요, 대처상황에 대한 각종 전략으로 생각이 분분했다. 나약하고도 엉뚱한 상상이 번복되기도 했다.  
 
'어디 두고 보자, 오기만 해 봐라. 처음일 때 반드시 군기를 잡아야지.' 
 
잔뜩 벼르고 있는데 남편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모습이 가엾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괜히 결혼했다 싶고 마음이 들쭉날쭉 하는 것이 조절되지 않는 난롯불처럼 타오르다가는 파닥거렸다. 밤이 짙어지다가 깊어지더니 어렴풋한 여명에 이어 어둠이 퇴색되고 창밖이 밝아오는 것이었다. 아침 운동하는 것처럼 하고서 대문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하는데 때마침 아침 햇살이 건너편 도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마음이 순해지기 시작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아침밥을 할까 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밥을 해 줘? 먹든 말든!'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계를 수백 번도 더 보았기에 본능적으로 눈이 벽시계를 향하였다. 아침 여덟시가 막 지난 시각이었다. 
 
'지금 이때다!'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 최적의 순간이었다. 한 바탕 퍼부어도 반박 못할 절호의 기회가 언제 또 다시 오겠는가?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생겼다. 
 
"귀가 시간이 너무 이른 듯하옵니다. 다음에는 조금만 늦게 귀가하시지요."
 
조금 전 도로를 퍼져오며 아침을 밝히던 그 햇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막 잠 들려다 깨어나 아리 숭숭한 때문이었을까?  밤 동안 내내 기다리면서 벼르고 준비한 어휘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골라서 잔소리든 큰소리든 무엇이든 단단히 버릇을 들여야 마땅할 상황에 엉뚱한 말로 몽땅 놓쳐버렸다. 툭 던지듯 털어버린 말에 나부터 깜짝 놀랐다. 남편도 눈이 둥그레지더니 씩 웃으며 미안하다고 아주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밤새워 마련한 기선제압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날 남편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들어왔다. 전날 밤의 피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미안함이 컸으리라. 저녁을 먹은 뒤 고백하기를 아침에 집에 들어올 때 부부싸움 정도 단단히 각오하고서 잔뜩 긴장했는데 안도했다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미안하다 고맙다 하며 맹세 아닌 맹세 분위기를 내는 것이었다. 
 
남편의 첫 외박은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가 버리고 나는 돌발적인 말로 상황을 무마시켜 버린 것도 모자라 고상함이란 족쇄를 차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이 나를 보는 시각에 존중감이 실렸다는 것은 내 착각만은 아니었다. 
 
어울려 사는 게 사회라면 최소 무리단위가 가족 안의 어울림이다. 첫 외박의 질 높은 면역체계가 형성된 뒤로 35년, 그 어울림을 가끔은 통제하면서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을 흉내 내 사랑하거나 위대한 경영자의 능력을 수없이 시험 당해 온 시간이었다. 가족끼리 서로를 조율하다 보면 훌륭한 사회적 화음이 형성된다. 가족은 세대의 연속을 유도하는 인류사의 소중하고 위대한 단위요소이다. 가족해체가 안타까운 현실을 걱정하며 위대한 성녀 마더 테레사의 말씀 중 '사랑이 시작되는 곳' 부분을 인용해 본다.
 
"사랑은 어디서 시작합니까?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가족 안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웁시다. 우리 가족 안에 대단히 불쌍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그들을 몰라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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