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미선 시인

봄의 전령사인 비가 내렸다. 매서운 찬바람을 견뎌낸 텃밭의 상추도 기운을 차린 듯하다. 꽁꽁 언 대지를 적셔주던 비처럼 코로나로 지쳐있는 우리 곁으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7일 김해시는 숙원사업이던 법정문화도시인 '문화도시 김해'로 선정됐다. 경남 가야문화권에서 처음으로 선정된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김해문화재단 관계자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시민들의 관심으로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가야의 얼을 이어온 김해시민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해주었다.
 
김해시가 이런 목표를 성취하듯, 누구에게나 달성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 딱히 활자화 시키지 않았을지라도 '이런 일은 꼭 해보고 싶어'라는 막연한 소망은 있을 것이다. 순서를 매기지 않아도 손가락에 꼽히는 소망이 있기에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좀 더 열심히 살아간다. 
 
필자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오면서 레지던시 입주작가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전국적으로 입주작가 프로그램이 있지만 거리상의 여건과 일상생활을 접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어 선뜻 마음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간절하면 이루어진가는 말을 실감했던 일이 지난해에 일어났다. 2020년 8월 말, 김해문화재단에서 레지던시 사업을 실행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서류심사를 거쳐 개별 인터뷰 심사를 통해 입주작가가 선발된다는 선정절차였다. 
 
서류심사는 걱정되지 않았지만 인터뷰 심사가 걸렸다. 막상 인터뷰 심사 현장에서 느꼈던 벽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았다. 전국에서 응모한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과 겨루어야 했다. 분야가 달라 응모작가들의 인지도는 몰랐지만 대기실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단한 작가들이라고 짐작했다. 일생에서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행히도 결과는 선정, 10월 말부터 '무계웰컴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온 젊은 작가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수행했으며, 이들과 입주작가 결과물로 책 한 권을 만들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하긴 했지만 장유무계리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을 토대로 오륙십 년 전의 생활상을 소재로 글을 썼다. 
 
이 결과 '무계리 사람들'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마을 이야기와 전통시장인 장유오일장 모습이 담긴 책이다. 소재를 수집하고 글로 쓸 수 있는 기간이 약 40일 가량으로 길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알차게 보낸 시간이었다.
 
'평생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는 말처럼 무계레지던시는 나에게 주어진 기회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여고생시절부터 꿈꾸어 온 것이 있다. 한 마을에서 일주일씩 살아본다면 전국의 모든 마을을 다 돌아보는데 얼마만큼 시간이 걸릴까하는 가당찮은 상상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교통이나 숙박시설, 캠핑카가 보급돼 전국 방방곡곡 여행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티비에서도 캠핑카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말을 또다시 믿어보기로 한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변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작은 모임에서부터 지역축제가 개최되지 못하며, 관광명소 방문에도 제약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하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이 덕분인지 나만의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즈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런 때에 이루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 둘 이뤄보는 건 어떨까. 간절하면 이뤄질 수 있으니 말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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