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유면 월봉서원에서 열린 '제7회전국경전성독대회'에는 전국에서 16개팀이 참가했다.  사진/박나래 skfoqkr@
월헌 이보림 선생 뜻 기리는 향사
제7회 성독대회 지난 10일 개최
유림·제자·후손·대학생 등
선비문화 계승·전통독서교육 체험
부산대팀 올해 대상 차지

천자문을 배워본 사람은 "하늘 천, 따~지"하고 운율을 타며 한자를 외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는 것만이 아니라, 소리 내어 외는 것, 옛 선비들이 글을 배우고 익힌 방식이다.
 
지난 10일 장유면 관동리 월봉서원(경남도 문화재 464호)에서 '제7회 전국경전성독대회'가 열렸다.

이날 월봉서원에서는 영남의 이름난 유학자였던 월헌(月軒) 이보림(李普林·1902~1972·조선 중종의 덕양군 13대손) 선생의 뜻을 기리는 향사가 봉행됐다. 향사에는 지역 유림과 제자, 문중 후손들이 참가했다. 연로한 유림들에서부터 청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유건을 쓰고 의관을 정제한 모습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월봉서원과 어우러져 시대를 옛날로 돌린 듯 했다.

향사에 이어 '전국경전성독대회'가 열렸다. 이는 선비문화를 계승하고 전통 독서교육을 보급하기 위한 행사이다. 사서삼경, 고문진보 등 전통사상과 경로효친 사상을 담은 경전을 소리내어 읽는 대회이다. 전국에서 한학을 공부하는 유림들과 학생들로 구성된 16개 팀이 참가했다.
 
한문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대회 주최자인 월헌 선생의 손자 이준규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글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소리를 들어보면 경전의 문구를 이해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슬픈 대목은 슬프게 읽고, 내용에 맞춰 발성도 다르게 한다"고 말했다.
 
이준규 교수는 "한자를 익힐 때도 본래 저렇게 소리를 내어 읽으면서 배운다"면서 "여기에는 글귀를 마음에 새긴다는 뜻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나는 어린 시절 새벽 무렵에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글 읽는 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면서 참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전라도와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참가자들 중에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부산대 한문학과 대학원생 전형기 군은 "한문학과를 4년 다니는 동안에는 한문을 해석하는 데 주력했다. 대학원 과정에 들어서야 비로소 옛 선비들처럼 성독하는 걸 배웠다. 그것이 학문을 하는 전통적인 방식인데,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대회 참가를 위해 연습하는 동안 재미도 느꼈고, 성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유림'이라고 하면 어딘지 정적이고 지루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동적이었다. 이 교수는 "이 대회를 일반인들도 참가할 수 있는 고전문화콘텐츠로, 전통독서교육 기회로 계속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 선비가 글 읽는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까지 기쁘게 하는 소리이다.
월봉서원의 주련(좋은 글귀를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에는 '독립불구(獨立不懼) 수사선도(守死善道)'라는 글귀가 있다. 월헌 선생이 평소 주장하며 실천하고자 한 글이다.
 
이 교수는 "독립불구는 '홀로 우뚝 서서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 근대화와 산업화 등 격변해 가는 시대를 지켜보셨던 월헌 할아버님은 역사의 와중에는 반드시 지켜갈 진리가 있다고 하셨다. 세파에 따르지 않고 진리를 지키겠다고 늘 말씀하셨다. 수사선도는 죽음으로써 선도(올바르고 좋은 길로 이끔)를 지켜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글귀"라고 설명했다.
 
월헌 선생은 새벽 4시께부터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할아버님의 글 읽는 소리에는 자신을 가다듬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된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세 가지 소리를 일컬어 '삼희성(三喜聲)'이라 한다. 다듬이 소리, 글 읽는 소리, 갓난아이 우는 소리를 이른다. 그 중 선비가 글 읽는 소리는 진리를 찾는 가운데 마음을 다스린다 하여 듣는 이의 마음까지 기쁘게 하는 소리로 꼽혔다. 이날 관동리에서는 예전 월헌 선생의 글 읽는 소리가 새벽을 깨운 것처럼, 현대의 선비들이 차례대로 경전을 읽는 소리가 서원 담장을 넘어 마을로 퍼져나갔다.
 
한편 성독대회 심사위원회(심사위원장 한국고전문학번역원 성백효 교수)는 대상으로 부산대학교 대학원생 남윤덕 외 5명으로 구성된 팀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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