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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잉시대를 품은 빛과의 따스한 소통⑥ 설치미술가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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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01.04 16:41
  • 호수 6
  • 9면
  • 황효진 기자(atdawn@gimhaenews.co.kr)

   
▲ 생림면 마사리 작업실에서 만난 설치미술가 박재현. 허공을 가로지르는 시선. 작가는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걸까. 그의 머릿속이 사뭇 궁금하다.

그가 처음부터 설치미술을 했던 것은 아니다. 박재현은 원래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당시(1984년)에는 그 개념 자체가 없어 '설치미술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때 학교에서 흑백텔레비전을 천정에 매달아 놓고 트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도 '이런이런 것을 만들어봐야겠다'라고만 생각했지 '설치미술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죠."
 
졸업 후 얼마동안 그는 작품을 벽에 붙임으로써 입체감을 표현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본격적으로 '설치'라는 개념을 갖고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다. 더 이상 벽이 아닌 '공간' 전체로 작업을 확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초기 작업에는 빛이 사용되지 않았다. 주로 큰 덩어리 여러 개를 만들어 놓고 '우주'를 표현했다. 당시로는 이것 또한 굉장히 신선한 시도였고, 그는 주목받는 작가로 단숨에 떠올라 1995년 부산청년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앞으로 빛이 주가 될 것이다. 작가라면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1996년작 'Presage of New Energy'였다. 자신이 만들었던 구조물에 레이저를 넣어 사람이 걸어다니면 빛이 반응하도록 했다. 거의 국내 미술계 최초의 인터랙티브(상호작용) 작업이었던 셈이다. 이 새로운 작업의 등장에 평단은 물론 관객들까지 들썩였다.
 
   
 
작업을 위해서는 레이저를 계속 사용해야 했지만 문제는 비용이었다. 백남준의 호암아트홀 전시를 지원했던 삼성SDI까지 찾아가 봤지만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그래서 그가 찾은 방법은 'LED(Light Emitting Diode·발광다이오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2000년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에 전시됐던 'Toward Unknown Energy2010'은 LED를 사용한 첫 작품이었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시도였다. 사회적인 요소를 담은 것이다.
 
"미술관 마당에 깔린 잔디를 보는데 '무덤' 같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 앞에 세워진 구조물이 '비석' 같았고요. 그 비석에 헝겊을 씌워 사람 같은 느낌을 내고, 바닥에 흐르는 물에 아이들이 갖고 노는 공을 깔았죠."
 
이 작업의 포인트는 씨랜드 화재사건, 인천호프집 화재사건, 부일외국어고등학교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을 LED로 나타났다 사라지게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주기를 바랐다.
 
2004년, 그는 빛 그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주는 여러 가지 느낌을 다른 요소와 조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밀랍으로 구조물을 만들어 한지를 씌우고, 그 속에 빛을 담았다. 그리고 바닥에 물을 깔아 관객들이 장화를 신고 관람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며 내는 '찰박찰박'하는 소리, 작품과 어둠 속에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공간의 느낌, 한지를 통해 빛이 어른거리는 느낌…. 박재현은 그제서야 그동안 작업을 하며 느낀 현실과 기억간의 소통, 교류, 빛의 인식 등에 대한 고민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빛을 이용한 작업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디지털화된 시대에서 빛이 인간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앞서 말했듯, 빛은 사람을 편리하게도 편안하게도 만든다. 그러나 이때의 '편안함'은 감성적인 안락함이나 따뜻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일 뿐이다.
 
"저 같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디지털이나 빛의 느낌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는 물이나 불, 빛, 심지어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넘쳐나고 있잖아요. 편리성이 극대화됐지만, 이것이 각 개인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거대기업들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들었다는 얘기죠."

그가 2008년에 디지털숫자와 거울을 이용해서 만든 '복제된 풍경' 또한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암흑과 그 속에서 빛을 내고 있는 디지털숫자, 거울을 통해 보이는 관객의 모습은 '디지로그(Digital+Analog·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것)'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박재현의 방 벽에 걸린 그의 작품 사진과 초상화, 가족사진.

작업을 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박재현은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요"하고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답을 들려준다.
 
"첫 번째로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관객들이 모르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다고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의미를 강요하는 것밖에 되지 않거든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미묘한 선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어려워요. 저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 새로운 길을 걸어보려 한다. 바로 영상이나 사진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빛의 느낌을 어떻게 잡아낼 것인지, '박재현의 느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고민 중이다.
 
2011년, 한동안 그의 작품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가 "올해는 전시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대신 박재현은 마사리 그의 작업실에서 전선을 연결하거나 땜질을 하며, 조금 더 '인간다운' 작품을 꿈꾸며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박재현은...

1960년 부산시 부산진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이후에는 설치미술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1983년 부산 가톨릭센터 전시실에서 단체전인 '오브제와 현장전'에 참여했다. 1989년 제15회 부산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1993에는 부산 갤러리월드에서 첫 개인전 '記憶(기억)에서 氣(기)로'를 열었다. 1995년 부산 청년작가상을, 같은 해 전국무용제에서 미술상을 수상했다.
 
항상 시대를 앞서는 새로운 작업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외국에서 전시를 열거나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1987년 부산-오사카 현대미술교류전을 시작으로 그 이듬해 일본 도쿄의 A화랑에서 '박재현-마사유끼 가와무라전', 1991년 일본 동경도미술관에서 아시아현대미술제에 참여했다. 2002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CS FINE ART에서 '빛은 말한다'는 주제로 첫 해외 개인전을 열었다. 2008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부산의 발견전'에 부산을 대표하는 중진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6년 개관한 부산의 대안미술공간인 '오픈스페이스 배'의 운영위원을 맡아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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