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산 원동면 장선마을 송문현 이장이 마을의 지원금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선주 기자


 36년 서양 고대사 교수 역임
"이장과 교수 일 다른 것 없어"
 응급구조대·단체 채팅방 등
 소통과 참여 위해 적극 나서



"교수님으로 불리다가 이장님으로 불리니 아직도 적응이 어렵네요."
 
36년간 교수생활을 끝내고 한 시골마을 이장이 된 송문현(67) 씨의 방 한켠엔 책들이 수북했다. 올해 1월 양산시 원동면 장선마을 이장이 된 송 씨는 2년 전만해도 부산대학교에서 서양 고대사 등 역사를 강의한 교수였다. 그가 장선마을과 인연을 맺은 건 2004년. 퇴임 후 한적한 전원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해 배내골에 집을 짓고 오간 것이 시작이었다. 2019년 교수 퇴임 이후에는 아예 거처를 장선마을로 옮겼다. 
 
이사 이후 그에겐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악보 삼아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마을 일이 많아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는 "그동안 연구해 온 학문과 이장으로서 할 일이 크게 다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송 씨는 이장이 된 후 가장 먼저 마을 주민간 소통 창구역할을 할 단체채팅방을 개설했다. 약 70명 가량 되는 마을주민들은 채팅방에서 사과농사 정보와 마을문제를 공유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역사 속 민주정치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장선마을에도 이웃 간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며 주민공동체를 강조했다. 
 
그는 주민 간 소통을 통해 마을 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공공기관에서 지원받고 있는 지원금 사용 갈등을 예로 들었다. 밀양댐과 낙동강을 끼고 있는 장선마을은 2000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주민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에선 장선마을에 발전기금 명목으로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마을은 지원금으로 땅을 사서 공동 경작지로 만들고 수익도 배분했다. 
 
그러나 2014년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지원금을 두고 기존 주민과 새로 터를 잡고 이주한 주민들간 갈등이 생겼다. 이주 주민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법개정 내용이 문제였다. 주민들 간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생겼다. 
 
송 이장은 "양측 모두 수용 가능한 해법을 찾고 있으며 설득과 배려를 우선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술이 있는 주민들을 모아 응급구조 자원봉사단을 만들었다. 전기, 보일러, 수도 등 긴급한 문제가 생겼을 때 A/S업체가 시골마을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는 "집 앞 도로에서 차량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며 "그 이후로 마을 주민들끼리 곧바로 도움을 주고 달려올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응급구조대에는 인명구조자격증 소지자, 정비 기술자 등 15명의 마을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2개월여 간 이장으로 지내며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송 이장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최근 그는 시청에 제출할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마쳤다. 마을 경작지 일부를 체험농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직접 PPT를 보여주던 송 이장은 "텐트를 치고 간단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평상을 설치하는 등 차별화된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년의 임기동안 마을 구석구석을 살필 계획이다. 그는 "항상 회의록 등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이겠다"며 "농가 살리기 등 마을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이선주 기자 sunju@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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