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관 수의사는 25살에 수의사가 돼 50년이 흐른 지금까지 동물을 진료하고 있다. 원소정 기자


 산부인과 의사 꿈꾸다 수의사 돼
 가축제왕절개수술 전문으로 활동
 농장 곳곳 찾아가서 수술하기도
“다양한 종 다루는 종합병원 필요”



"다른 거 하나 없어요. 동물병원이나 가축병원이나 모두 동물의 아픈 곳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곳이죠."
 
1971년 3월 15일 개원해 최근 개원 50주년을 맞이한 창원중앙가축병원은 산업동물(돼지, 소, 말 등)을 진료하는 창원시에서 유일한 가축병원이다.
 
병원을 운영하는 이재관(75) 수의사는 "병원을 개원했던 당시만 해도 '동물'보다는 '가축'의 개념이 강했지만 1990년대부터는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이 크게 늘며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사람들에게는 '동물병원'이 아닌 '가축병원'이라는 말은 생소하게 들린다. 그런데도 가축병원이라는 옛 상호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 수의사는 "후배 수의사들로부터 선배가 먼저 동물병원의 상호를 사용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많이 받아왔지만,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옛 것이 좋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사실 이 수의사의 어릴 적 꿈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생모가 임신중독증에 걸려 내가 4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13살이 돼서야 알았다"며 "그때부터 산부인과 의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고 하루에 5시간만 자며 죽어라 공부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 수의사는 지역 명문학교로 유명했던 마산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 곳에서도 반에서 1~2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비싼 대학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돼 당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었던 경상대 수의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산부인과 전문의를 희망했던 그는 수의사가 된 후 가축 제왕절개 수술을 전문으로 했다. 비록 수의사가 됐어도 어릴적 꿈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어미 소가 출산을 제때 하지 못하면 어미와 새끼 모두 위험해질 수 있어, 당시 귀한 재산으로 여겨지던 소의 제왕절개 수술은 농촌에서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이 수의사는 밤낮없이 농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수술을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산업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들이 설 자리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수의사는 "소 한 마리의 가치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진료를 보는 경우도 드물고, 최근에는 농장주가 자체로 진단하고 약품을 투입하는 행태가 만연해져 수의사를 찾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 동물에게 의료행위를 한다는 건 동물을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다양한 종을 진료하는 동물병원도 늘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수의사는 "대부분의 동물병원이 한정된 종류의 동물만을 진료해 소형견, 고양이 이외의 동물을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다"며 "사람에게도 종합병원이 필요하듯이 동물에게도 종합병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평생을 수의사로 살아왔다는 그는 남은 생을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보내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 수의사는 "일하기 바빠 해외여행은 꿈도 못꿔봤고, 국내여행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가봤다"며 "병원을 정리할까 싶다가도 '원장님이 안계시면 진료 봐줄 사람이 없다'는 주변인 만류에 계속 일을 해왔지만, 이제는 휴식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 하나 둘 씩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원소정 기자 ws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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