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자랑하고픈 둘째 형이 있다. 운동 후유증으로 인한 중증 지체장애인이라서 중학교를 중퇴하였지만, 병상에서 읽은 많은 책들을 통해, 어린 나에게 역사적 인물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꿈을 심어 준 형이다. 이제는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마치고, 책과 함께 노년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 어릴 적, 구석방 선반에 꽂혀 있던 두껍고 낡은 연두색의 고전 책들은 10대의 병든 몸이었던 형이 읽었던 것이다. 45년 전 우리 집을 추억하게 하는 장면이다.
 
몇 년 전 형은 인상 깊고 재미있게 읽었다며, <저우언라이 평전>을 내게 권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는 중국 문화혁명 시기의 혁명가이자 정치지도자,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주석 마오쩌둥(모택동)을 보좌하며 제1대 총리로 27년간 자리를 지킨 중국의 위대한 총리이다. 그는 근현대 중국사에서 중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정치가이다. 증오와 공포로 점철된 혁명의 시대에서도 해학과 균형감각, 그리고 교양을 잃지 않았던 그는 타협과 온건, 그리고 실사구시의 실용정신을 유지하며 중국을 이끌었다. 중국인들은 사망한 지 36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를 추모하고 있다. 그가 인민에 대한 사랑과 겸손과 청빈한 삶을 실천한 정치가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편향된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았던 나에게 이 책은 역사의 흐름을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게 했다. <저우언라이 평전>은 나의 삶 속에 겸손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각인 시키는 귀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저우언라이의 '언라이'는 '은혜가 온다(恩來)'는 뜻으로 그의 모습과 성격을 느끼게 한다. 그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인품의 영향이, 오늘날 중국이 세계의 중심국가 반열에 우뚝 서게 하는 은혜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권력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라 일과 인민들의 배고픔을 같이 하기 위해서, 결혼 후 아이도 갖지 않았고 자신의 몸까지도 나라를 위해 헌사한 저우언라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는 또한 늘 자신을 '문화계의 친구'라 표현하며 "문화는 인민들에게 봉사하고, 사회건설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예술계의 규율을 존중하고 예술계의 민주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중국의 문화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한 저우언라이는 최근 우리나라의 문화권력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역의 클래식 음악 발전에 작은 기여를 하고자 지난 15년 여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는 동안, 함께 수고해 준 예술가와 성원해 주신 관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가져왔다. 이제는 한국 최고의 공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해문화의전당의 공연 사업을 총괄하는 공연감독직을 감당하면서, 오늘도 귀한 시간을 내어 전당을 찾아 주시는 시민들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한다. 한 사람이 밝은 빛을 내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 빛이 스며들어 이 사회가 밝고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을 확신하며, 나의 삶의 행위가 저우언라이에 비할 수 없지만 작은 섬김으로 닮아가고자 한다.


>>장은익 씨는
성악가·지휘자·교육자·공연기획자. 1997년 공연기획사 '미래와음악'을 설립했다. 2002년 아태장애인 경기대회 문화행사, 부산국제합창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최 스포츠와 노래, 한일 우호의 해 공식 문화행사 등 국내 외 문화행사의 기획과 제작 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김해문화의전당 공연사업을 총괄하는 공연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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